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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회비와 상장

50년전의 추억 여행

by 노크


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50년 가까이 살다가 이곳 순천에 내려온 지 벌써 10년째. 이제 여행 삼아 서울을 간다.

이번 여행에서는 오랜만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도 다녀왔다.

문득 어릴 적 살던 동네가 가보고 싶어졌다.

한동안 응답하라 1998이라는 드라마가 그리움 저편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 한동안은 추억 속의 옛친구들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나는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동에 살았었다.

오랜만에 가본 그곳은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직은 재개발이 되지 않아 예전의 모습 그대로라 반가왔다.

특히 학교 가던 골목길이 여전히 남아 있어 대문을 열고 친구가 웃으며 나올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학교가는길목.jpg

학교 가는길의 골목길


골목을 돌면 학교정문이 보이고 정문앞에는 문방구가 있었으며 그 문장구는 늘 우리를 유혹했다.

딱히 살것도 없으면서 등하교길마다 늘 문방구에 들러 무언가를 구경했다. 아마도 그때는 모든게 신기하고 새러워 사고싶은 게 많았을텐데 늘 주머니는 비어있었다.그래서 눈으로라도 한번 보는 것으로 위로를 삼지않앗을까싶다.

50여년전에 문방구였던 자리에 지금은수퍼가 자리잡았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 때 문방구 주인이 지금의 수퍼 주인이란다.반가왔다.

문방구.jpg

50여년전보다 학교 정문앞이 넓어졌고 깨끗해졌다.

그리도 넓어 보였던 정문 과 운동장 그리고 친구와 장난치며 떨어진 나뭇잎을 쓸던 교실 입구의 현관.

아 ! 아득했던 나의 유년 시절이 저만치에서 나에게 손짓을 한다.반갑다고.


유치원이라는 시설이 있는지도 몰랐던 그 때. 내 생에 첫 입학은 동명 국민학교였다.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배운 것은 스프링으로 묶인 무지 종합 장을 여러 번 접어 보이지 않는 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하얀 면 위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선 긋기를 하는 것이었다. 또 다르게는 위에서 아래로, 직선에서 곡선으로, 지그 제 그로 선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아마도 소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한 활동이었으리라. 지금은 2~3살정된 아이들이 시작하는 활동이다. 지금이야 24개월 전후로 한글 공부를 시작하여 어린이집 입학 전에 동화책을 줄줄 읽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는 ㄱ, ㄴ,으로 시작하는 모음과 자음도 입학한 후에 배웠다.


1학년 첫 가방은 사촌 언니에게 물려받은 어깨에 메는 빨간색 가방이었다. 가방 덮개가 칼로 베인자국이 있는 걸 기억한다. 아마도 그 언니는 새 가방이 갖고 싶어 가방에 칼자국을 낸 것이 아닐까 하고

이제야 생각을 해본다.

그랬든 저랬든 난 그 가방이라도 좋았던 것 같다. 생전 처음 무엇인가 내 것을 가졌고, 그리고 학교에 간다는 게 신난 던 것 같다.10살 때까지 그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닌 것 같다.

왜 그때 나는 엄마에게 새 가방 하나 사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던가? 지저분하게 때 묻고 여기저기 헤어졌으며 칼에 베이기까지 한 그 가방이 뭐가 좋다고 그 가방을 메고 뛰어다녔을까?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본다. 예뻐하던 막내딸에게 가방 하나 사주지 못하고 조카가 쓰던 헤진 가방을 들고 다니게 할 만큼 어려웠던 형편의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형제가 옷이나 가방 등을 물려 주고, 받을 때였다. 큰언니와 나는 9살 터울이었고 언니는 보자기에 책을 싸고 다녔기에 사촌 언니에게 가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가방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그 가방이라도 좋았던 것 같다. 그가방은 아무리 헌 가방이라도 언니들이 쓰던 보자기보다 나은

신식가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 어린 나를 슬프게 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육성회비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등록금·교육비다

연탄 한 장이 25원 할 때 아마 육성회비는 200원 300원 정도였을까? 잘 모르겠다. 가방 하나 사줄 형편이 못 되는 부모님은 어디 육성회비를 제때제때 주셨을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나는 조회시간이나 종례시간에 자주 이름이 불렸고 급기야 추운 복도에 나가 손들고 서 있는 날이 많았다.


지금이야 나라에서 무상으로 중등교육이나 그 이상까지도 교육비나 급식을 지원하지만,

그때는 육성회비를 내야 했다.

언제까지 낼 거냐? 왜 안내냐?
라며 반 애들 앞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물었지만 난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시절 한 반에 60명이나 넘는 그 많은 애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을까?

내 성적표의 담임 의견란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같은 내용이 쓰여있었다.

순하고 얌전하며 말이 없음이라고

순하고 얌전한 애라기보다는 아마도 육성회비도 못 낸다는 자책감에 기가 죽어 커다란 눈만 굴리며 말도

제대로 못 한 게 아닐까 싶다.

8살 9살 10살 그 어린 것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육성회비 안 낸 걸 가지고 선생님들은 나를 복도에 세워 손을 들게 했을까? 그래도 집으로 쫓아내지 않은 것으로도 감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3학년의 초여름날인듯싶다. 친구와 함께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데 우리 반 반장이 와서 말했다

야 ! 이** 담임이 너 교장실로 가래.

그 소리에 순간 하늘이 무너지듯이 놀랬다.

아 육성회비를 계속 못 내니 이제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를 혼내려고
교장실로 오라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다. 교장 선생님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교장 선생님은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마음으로 교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바가지 머리의 촌스러운 아이는 잔뜩 움츠리고 두 눈에 겁이 가득한 채 교장실 문을 열었을 거다

교장실.jpg

그때 그 교장실 ~


그런데 그런 내 모습과 달리 교장실은 분주했다. 알고 보니 월요일 조회를 준비하는 방송반 언니·오빠들의

바쁜 손놀림이었다. 운동장 조회가 대부분인데 가끔은 교장실에서 조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날은 얼마 전 있었던 어버이날 교내 백일장대회 입장자 시상식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난 그 시상식에 저학년부 최우수상 입상자였다.


지금껏 한 번도 어느 것에서도 상을 받아본 적이 없던 내가 상을 받는다고? 육성회비 안 냈다고 교장 선생님께 혼날 줄 알고 잔뜩 긴장하며 겁먹었었는데 내가 상을 받는다고? 라는 생각에 나는 어지러웠다.


반전 드라마 같은 상황에 어린 나는 얼마나 기뻐했을까? 아니 얼마나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까?

육성회비도 못 냈는데 이상을 받아도 될까? 미안하니까 안 받는다고 할까?
아니 상 받고 빨리 밀린 육성회비 낸다고 할까? 라며 오만 생각했을까?

아니다. 어린 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울어버리고 싶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무슨 글짓기를 잘한다고

상을 줄까? 육성회비도 못 내고, 받아쓰기 100점도 못 받는 내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뻐해야 할지

어찌해야 할지 몰랐을 그것 같다.

어버이날 백일장에는 어버이날인데 엄마·아빠에게 선물하나 제대로 못 해드려서 죄송하다고 이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돼서 꼭 엄마·아빠 기뻐하시는 선물을 많이 해드리겠다는 내용을 쓴 것을 기억한다. 솔직하고 진솔한 어린애의 마음을 이쁘게 봐주신 것 같다.


그렇게 상을 받고 교실로 돌아오니 담임 선생님이 나를 칭찬해주시면서 엄마를 학교에 모시고 오라 했다.

그날인지 다음날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처음으로 학교에 오셨다. 엄마와 담임 선생님이 얘기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봤지만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나도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그리고 그때부터 글 쓰는 일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이후 중고등학교 때도 백일장대회 때마다 크든 작든 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는 방송인 봉두완 아나운서에게 상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모두 나를 문학소녀라 불렀으며 공부보다는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나의 꿈은 시인이 되는 거였다.

나는 아직 등단한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시를 쓴다.

매일 시를 생각하고 시를 쓰는 나는 이미 시인이다.

내가 시인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오랜만의 시간여행을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해본다. 그 어려운 시절에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던 부모님·나에게 꿈을 갖게 해줬던 학장 시절 그리고 반전 드라마를 썼던 그 초여름날의 추억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를 미소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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