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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Apr 28. 2020

나만의 스타일 만들기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든다



패턴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 생기면 내 작업을 좋아하는 팬들이 생기고 일을 의뢰받는 경우도 생긴다.






흔들리지 않는 스타일과 돈의 관계는 복불복이다. 내가 작업하는 스타일이 현재 트렌드와 맞으면 의뢰가 많이 들어와 바빠지는 거고, 맞지 않으면 그저 소소하게 일거리를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를 시작할 때에는 인기가 많기를 바랐건만, 원래부터 아싸인 나는 그림도 인기가 없는 아싸다. 슬프게도. 성격이 그림에 묻어 나오니까 당연한 건가? 싶지만. 



펜 드로잉을 주로 그렸을 때에는 그나마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요새는 무척 한가하다. 그렇다고 펜 드로잉으로 다시 스타일을 돌리자니 손 때문에 하질 못한다. 웬만해서는 그리겠는데, 한 번 그림을 그리고 나면 심각할 정도로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저려와서 포기했다. 나중에 찬찬히 생각하니까 힘을 너무 주면서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니까 아픈 거였다. 그래서 현재의 작업 방법을 고수하면서 트렌디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인 중 누군가는 그랬다. 왜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로 그리지 않냐고. 그림 스타일을 바꾸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친한 사이였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차게 식는 게 느껴졌다. 그의 말처럼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그 스타일을 만든 사람의 노력을 도둑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유행이 끝나면 어떻게 하라고? 유행만 좇는 사람이 되라는 건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는지, 이해는 하고 있는 건가? 1분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에 슬며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그가 나에게 오물을 뒤집어 씌운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오물은 얼굴과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그걸 몰랐다.





쉬운 길은 있지만, 그 길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나를 계속 침체시키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한 것이다. 힘들지만, 내 미래를 위해서는 나 자신과 싸우며 내 스타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에게, 모든 것을 싹 무시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친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왜 나는 그에게 이런 생각들을 조목조목 따지지 못했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분노는 여전하다. 그런데도 나는 말하는데 서투른 사람이다. 그저 계속 분노할 수밖에.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확실히 어렵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학생 때부터 정해진 그림 스타일을 따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빠르게 그리는 것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이미 유행하고 있다는 트렌드를 쫓아가기 바빴다. 내가 어떤 성향인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지를 모른 채 주입식으로 베껴 그리기만 했다. 그렇게 줏대도 없는 소심한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모른 채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본인의 스타일을 만드는데 이리도 힘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지만 그래도 늦지 않았다. 이제는 스스로의 스타일을 표현하고 있고,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갑갑한 마스크를 벗어던진 기분이다. 마음을 괴롭혔던 앓던 이가 쑥 빠진 느낌이다. 이제 잘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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