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의 연주회를 듣고 오던 밤의 생각
피아노를 좋아하는 두 아이가 음악학원에 다닌 지도 수년이다. 오늘은 아이들의 작은 연주회가 열리는 날이다. 학원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연주회이지만 한라 아트홀 소극장을 빌려,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며칠 전부터 부대에 서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던 딸들이지만 긴장하며 준비한 탓이려니 한다.
오후에 약속대로 소극장에서 리허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얻은 두세 시간의 여유는 장보고 커피 마시는 데 쓰기로 했지만, 이마트에 가서 급 피곤해진 남편 덕분에 테이크 아웃을 해온 음료를 마시며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서둘러 예약한 꽃다발을 찾아 연주회장으로 향했다. 아직도 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큰 딸의 문자가 와있다.
‘엄마, 정연이는 앞 순서니깐 빨리 와야 해요. 오고 있죠?’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카메라를 든 부모님들이 이미 시간보다 훨씬 전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영부영 자리를 잡고 앉자 이번에는 연주회를 앞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아이답게 뛰어다니기도 하고 서로 손을 잡고 깡충거린다.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시작을 알리는 진행자의 멘트에 뒷문은 닫히고 큰 전등은 꺼지면서 무대 앞을 비추는 조명만이 빛난다. 시작을 멋지게 해 준 한 아이의 연주를 듣고 나자 곧 둘째 아이가 등장한다.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에 앉아서 연주하는 폼이 제법 익속해 보인다. 수줍어하면서도 당차게 곡을 표현하는 아이가 신기하다. 세세하면서도 강약 조절과 곡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다. 두어 번 콩쿠르에 나간 덕분인지 긴장은 적당하고 집중하며 연주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리고 이어진 아이들의 연주. 학년도 나이도 다 다른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수준과 느낌에 어울리는 곡을 연주하느라 애를 쓴다. 연주를 틀리거나 오가며 귀여운 행동을 하는 모습도 다 예쁘다. 그 어떤 모습이든 아이의 숨소리까지 다 기억하고 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카메라도 집중해서 돌아간다.
마지막 즈음에 이어진 첫째의 연주는 이제 우리 가족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성숙하고 노련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꾸준히 시간을 들이며 연주해 온 아이. 그 아이가 만든 작품이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아이는 느꼈을까?
아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무언가 하나를 맛깔나게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했다. 연주곡 하나를 완성도 있게 연주한다는 것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과 고민의 흔적이 담기고 그렇게 이룬 그 하나의 작품마다 새겨진 공력들이 눈에 보인다.
생뚱맞게도 왜 늘어지고 싶은 겨울 방학이란 시간을 연습하며 연주회를 해야 할까?라는 나와 딸들의 고민과 무색하게 봄밤의 연주회는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연습을 통해 익힌 연주를 '연주회'라는 것을 통해 자신과 선생님을 넘어, 세상에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었다. 어떤 이에게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앞으로의 시작으로 남을 연주회.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건반을 치는 재미를 만끽한 것도 좋았지만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잘 뭉쳐서 타인에게 공개하며 함께 하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 피아니스트가 되어 보는 것이 연주회의 가장 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이렇게 하나를 잘 뭉치는 법을 매번 배우고 싶었다. 그것이 책이던, 수업이던, 무언가를 성의 있게 뭉쳐 나가는 그 작업이 지닌 의미를 다시 한번 배우며 돌아왔다.
물론 이 감동을 당장 글로 적고 싶었지만 오늘은 수고한 아이들이 먼저이므로 글을 쓰는 시간을 뒤로 미뤘다. 하지만, 새벽 미명이 다가올 때,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깨우며 말한다.
매일의 연습의 끝에 글을 다듬고 책을 만드는 행위에 대한 기대를 심어준 음악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