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을 찾다가 추억을 찾은 , 가족의 봄나들이
나는 튤립을 좋아한다. 온화한 연분홍과 진분홍, 하얀 튤립이 만개했던 5월의 서울랜드를 참 좋아했다. 30년도 더 먼 옛날, 어린이날이면 가족과 친척들을 모아 함께 가곤 했던 서울랜드는 5월에는 튤립 축제를 열곤 했다. 동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던 로맨틱한 느낌의 튤립이 가득한 공원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설레고 좋았다. 상계동 근처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곳으로 봄소풍을 가곤 했다. 교복 입은 언니, 오빠들이 슬며시 손을 잡고 지나가던 그 공원은 참으로 풋풋하고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기억 덕분인지,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후부터 봄이면 꼭 튤립을 보러 나선다. 저 멀리 한림으로 서귀포로 튤립 축제를 보러 간다. 아무것도 안 해도, 따스한 봄 햇살 맞으며 튤립 사이로 걷기만 해도 좋은 순간들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인 것 같다.
모처럼 화창한 이번 주말에는 집돌이 남편을 졸라서 자연으로 나가고 싶었다. 이제는 아빠처럼 집이 더 편해진 6학년 딸은 나가기를 망설였다. 아이에게 거창한 이유를 대면서 함께 한림공원으로 향했다. 늘 집에만 있으면 운동이 부족하다고, 함께 밖으로 나가서 조금 걷다 오자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아직은 3월의 초입이라, 한림공원은 매화축제가 막바지이지만 여기저기에 미리 심어둔 튤립들이 빛나고 있었다. 열매도 꽃도 없지만 푸릇푸릇한 새 잎 만으로도 빛나는 나무들이 있어 행복했다. 공원 곳곳을 걸어 다니는 우아한 공작새도 큰 재미를 주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기대한 작은 동물 먹이 주기 코너와 앵무새 먹이 주기 체험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곳곳에 여유롭게 드러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사람들에게 간식을 청하는 어여쁜 고양이들을 실컷 보며 기분이 좋았다.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고양이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고양이가 세수하득 얼굴을 그루밍하는 모습을 감탄스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느긋하게 서로를 기대어 자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는 평화 그 자체였다. 돌고 돌아 정원 근처에서 잉어와 새끼잉어들을 보며 꺄르륵 대고 왠지 섬칫했던 노란 뱀과 타조에게는 조금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살짝 허기진 마음에 들어간 민속 식당에서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을 만난 신기함도, 뜻밖에 녹두부침개의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느끼며 한 접시를 순삭하던 두 아이의 맛나던 순간도 다 소중했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딸아이의 사진을 찍어주며 싱긋 웃던 남편의 미소를 포착하던 순간, 노란 뱀과 악어가 무섭다며 큰 아이가 나의 손을 꼭 잡던 순간, 튤립 사이로 미소를 지으며 싱그러운 에너지를 뿜어내던 작은 아이의 사진을 담던 순간.
그 찰나, 나는 행복했던 어린 날의 어느 순간의 감각 속으로 여행을 떠난 듯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이기도 하고 아이이기도 했던 가족과의 봄나들이 속에 흠뻑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