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거진 제목이 ‘테린이 성장일기’인 만큼 성장 서사와 재밌는 일화 등을 담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살짝 있는데 요즘엔 예전만큼 테니스가 재미없다. 그간 치면서도 썩 즐겁지 않을 때가 간간이 몇 번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지속된다. 첫 권태기랄까. 원인을 찾아봤는데 최근 부서 이동으로 재택에서 출퇴근으로 업무 환경이 바뀌어 체력이 떨어진 게 가장 큰 것 같다. 두 번째론 활동하는 클럽과 레슨 시간대가 모두 저녁이라 추운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더 움츠리게 된 듯하다. 이번 겨울, 너무 춥네. 그래도 재미가 있으면 미친 사람처럼 나갔을 텐데 잘 안 나가는 거 보면 썩 재밌진 않나 보다.
출퇴근 시간이 편도 50분 정도인 데다 재택 1년 넘게 하다가 이전보다 일찍 일어나서 회사 사람들 얼굴 보고 자리에 계속 앉아야 있어야 하는 게 너무 지친다. 회사 왔다 갔다 하면 2시간 가까이 되는데 테니스 레슨은 고작 20분 받고 오는 것도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고.(극강의 효율충) 그렇게 찔끔찔끔 배워서 뭐가 느는 것 같지도 않다. (장기 곡선에서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게 자명하다는 나 어디 갔니) 만날 똑같은 것만 하는 것 같고. (반복 훈련을 통해 바른 자세를 체화한다는 나 어디 갔니)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하고 있는지 살짝 허무감이 들기도 하고.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하는 클럽도 일단 춥고 왔다 갔다 하는 게 귀찮다. 극강의 효율충이라 양 코트다 집에서 직선거리 3.1km, 3.7km에 위치한 곳인데도 말이다. 원래 한 코트에 4명 맞춰서 쉬는 타임 없이 빡세게 치는 걸 좋아하는데 당연히 클럽은 그렇게 못하니 대기시간이 있고, 겨울엔 추워서 죽을 맛이다. 혹한기와 혹서기를 거쳐야 진정 한 단계 성장한다고 말해놓고 혹한기에 개박살 나는 1인.
약 2주 동안 못(안) 나가다가 오랜만에 레슨 받으러 갔는데 공이 참 안 맞았다. 스트로크랑 발리 다 안 되는데 돌아가면서 하니까 총체적 난국. 게다가 갑자기 예전부터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코치님이 안 알려주시던 백핸드 슬라이스까지 전수하는 게 아닌가. 와 치면서도 내가 테니스를 하는 건지 몸개그를 하는 건지 실소가 터졌다. 답이 없다는 게 딱 이때 쓰는 말.
평소처럼 빈 코트에서 서브 연습하다 가거나 랠리를 할 수도 있었는데 옆 클럽에 양해를 구하기도 귀찮고 그냥 모든 게 귀찮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 배우고 싶었던 이 코치님은 평일밖에 레슨을 안 하시는데, 요즘 출퇴근으로 몸이 힘들다 보니 다른 코치님께 주말에 몰아서 받을까 아니면 레슨 자체를 그만둘까 싶기도 했다. 모든 게 다 피곤해지고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래서 취미생활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구나.
재미있게 쳤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한 2주 전에 게스트로 가서 테친놈처럼 4시간 동안 7게임 한 기억..? 테니스 선배님들, 노잼 시기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권태기면 애틋함을 느낄 수 있게 테니스와 거리를 둬야 할까요? 그래도 노력하고 자주 치러 가야 하나요? 이러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재밌어질 것 같기도 하고. ㅎㅎ 인생 만날 봄날일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