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작은 호의가 나의 삶을 비집고 들어온다면
'호의'(好意)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하여 주는 마음.
옛 속담에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행동반경이 좁아지다 보면 생각의 범위도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도 자의 반, 타의 반격으로 반경 1Km를 벗어나지 않은 생활을 수년 넘게 이어나가다 보니 내 생각과 이해의 폭 또한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된다.
내가 집을 벗어나 주로 활동하는 공간 대개가 각종 병원이기 때문일까. 특히나 나는 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유독 까다롭다면 까다로울 수 있는, 혹은 조금 높다면 높을 수 있는 자격기준을 매기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어떤 특별한 대우와 유별난 친절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들이 잠깐이나마 자신이 마주하는 환자의 상황과 고통에 얼마나 공감해주는지를 눈여겨보고, 그것이 내가 정한 기분에 한참이나 부합치 않을 때는 가차 없이 발길을 다시 하지 않는다.
뭐 병원 하나에 그리 까탈을 피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조금이라도 어딘가가 오래 아파 병원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실제 의료진이 행하는 의술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진심 어린 관심과 정성 하나가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그 병과 맞서 싸워나가는 데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소심하고, 생각 많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나로서는 어쩌다 병원에서 내 이 복잡한 마음을 헤아려주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게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
죄송한데, 저기 히터 바람이 안 오는 끝자리로 가도 될까요?
죄송한데, 따뜻하게 덮을 거 하나 더 주시면 안 될까요?
보통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내 입에서는 '죄송한데...'란 말이 적어도 5번 이상은 나오곤 한다. 그럼 개중의 대부분은 이 말을 2번 이상 듣는 순간 나를 대하는 말투나 행동이 처음과는 달라지는 게 다반사이다.
그럼 소심 트리플 A형에 버금가는 소심 B형 만성환자인 나는 그다음부터는 불편한 점이 있어도 그냥 감내해 나가면서 치료시간을 채우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얼마 전 새로 찾게 된 병원에서 정말 오랜만에 이런 나의 번거롭고 귀찮은 부탁에도 한결같은 태도와 어조로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치료사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죄송한데요. 선생님~
네 OOO님.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병원 특성상 나같이 신경 써야 하는 환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느 순간 방문해도 늘 한결같은 그 모습에 나는 얼마 안가 치료사님께 그만 홀딱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매번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하세요? 이 바쁘신 와중에도.
친절은요... 별거 아닌걸요.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지요. 얼마나 감사해요. 저처럼 나이 먹은 아줌마가 이렇게 나와서 일도 할 수 있고.
거기다 아프신 환자분들 돕는 일이니 매일이 감사하고 기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낯선 공간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따뜻함과 편안함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전해 준 치료사님의 대답에는 '당연히'란 말이 들어있었다.
'당연히...'
그 '당연히'라는 게 우리에겐 왜 그리도 힘든 일인 건지.
우리는 어쩌면 '당연히' 우리의 삶을 당연하게, 혹은 그 당연한 만큼도 못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나는 환자라는 명분으로 나를 대하는 그들에게 '당연한' 친절과 호의를 기대하고 있고, 또한 그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연한' 만큼의 정성으로 자신의 일을 대하며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다 '당연한'만큼의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이토록이나 반갑고, 가슴 설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내게 주어진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지를...
나는 그렇게 행하고 있으면서 그렇지 못한 자들을 비난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가를...
치료사님의 명랑한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도 병원을 찾는다. 그 해사한 미소에 어두운 내 삶에 잠깐의 빛이 스며드는듯하다.
누군가는 당연히 여길 그 작은 '호의'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젠 그만 포기하고 싶은 오늘을 버틸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내 당연 치 못한 삶이 당연할 수 있게 기꺼이 호의를 베풀어 준 그분께 전하지 못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