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상실

상실의 한가운데에 서서

by 꿈꾸는 카프카

'상실'(喪失)


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2.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또렷해지는 사실 하나가 있다.

그건 새롭게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보다 내게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잊혀가는 혹은 떨어져 나가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될 때까지,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라 함은 '목표에의 접근' '목표에의 달성'이었던 듯싶다.

자아 형성기를 거쳐 자아의 정체성을 느끼고 그 혼란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목표 없는 삶은 곧 암흑과도 같다는 것을...


여기서 목표라 하여 뭐 대단하고 거창한 무언가를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건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그래서 누구 앞에서 감히 목표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내용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구태여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지난 중간고사보다 시험 평균 5점 올리기.

-이번 한 주는 엄마와의 마찰 없이 조용히 넘어가기.

-다음 주말에는 내 친구 OO 이와 롯데리아에서 새우버거를 먹으며 마음껏 수다 떨기.


물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목표의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혀 황당무계하거나 이상적인 내용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내게 목표란 그 자체만으로도 일상을 움직이게 하는,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나만의 증기기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게서 문득 그 증기기관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을 활력 있게 움직이고,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던 그 원동력이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건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그랬다. 이건 생각보다 너무 이른 것이었다. 물론 100세 시대라 하여 평균 80년의 삶을 놓고만 본다 하더라도 사람이 80세까지 늘 한결같이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적어도 나는 50대까지는 내 인생을 움직일 증기기관차가 작동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었다. 또한 애초에 내가 꿈꿨던 미래의 계획들 중 단 50%라도 무언가는 성취되어 있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난 한참 목표를 향해 거친 경주마처럼 달려가던 그 시절 설정해 놓았던 것들의 반의반도 채 이뤄내질 못했다.

결과론적으로 나는 너무나도 빨리, 성급하게, 그 수많았던 목표들을 한꺼번에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난 아무것도 되질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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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내가 인상 깊게 본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이다.

여자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고 미리 써 놓은 유서에서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배우의 대사 그대로가 아닌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대강의 내용만을 옮기기로 한다.)

'아버지, 저는 마흔쯤이 되면 서울이 아닌 외곽 어딘가에 내 이름으로 된 작은 집 한 채가 있기를 바랐고,
아이가 있다면 하나 혹은 둘이 있었으면.
그리고 동네서점 어딘가에 주인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꽂혀있는 제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갖기를 바랐어요.'

' 하지만 아버지... 난 아무것도 되질 못했어요.'

여자 주인공의 무덤덤한 어조로 울려 퍼지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내 눈에선 거짓말처럼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젠가, 내가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었던 말.


'엄마, 난 아무것도 되질 못했어.
엄마의 바람처럼 엄마의 자랑이 될 만한 학교 선생님이 되지 못했고,
결혼해서 토끼 같은 자식 낳아 엄마에게 손주를 볼 수 있는 기쁨을 주질 못했어.
그리고 이 나이 먹도록 그 흔한 외국여행 한 번 가보질 못했어.
또 어디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식사 한 번을 하질 못했고,
나를 위해 예쁜 옷, 예쁜 신발, 예쁜 가방 하나 살 수 있는 소박한 행복도 누리지 못했어.
엄마. 아무래도 나는 이번 생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아...'
엄마. 나는 그토록이나 엄마가 원했던 삶을 살아내지 못했어.


그래, 정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바로 내가 여태껏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


그것에 대한 현실 자각, 인정이었다.


'무언가'는 될 줄 알고 그렇게 앞만 보며 살아왔는데, 무엇이 되기는커녕 '무엇'을 꿈꾸던 그때보다 오히려 몇 걸음쯤은 뒤로 더 후퇴해버린 것만 같은 기분...

그것이 어느새부턴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얽매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결국 자기가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을 어느 정도쯤은 인정한 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해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며 극은 마무리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나도 그녀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것도 아닌 채로, 그저 그렇게 아무랄 것도 없이 나의 일상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면

내 대답은 아직은 '글쎄요'일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글쎄요'란 대답으로 내 남겨진 삶에 대해 다시 정의를 내리기까지 고민하는 동안, 그 고민의 시간으로, 내 남은 삶의 시간이 다 채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의 상실.

방향의 상실.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살아내는 일.


어때, 나는 앞으로도 괜찮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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