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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Jul 28. 2024

독도에서 머리를 밟혔다.

<해외에서 크는 아이들의 우리나라 탐방기 3>

'얼마나 달려온 걸까?'

창밖을 내다봐도 처음 출발할 때의 모습과 큰 변화 없이 출렁이는 파도만 보였다.

'이제 곧 모습을 드러내려나?'

편한 자세로 졸았는지 온몸이 뻐근했다.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슬쩍 둘러봤다. 너무 조용해서.. 


400명 넘는 인원이 탔다는데.. 다른 승객들도 대부분 잠에 빠져있었다. 아무래뱃멀미를 방지하고자 마신 멀미약이 계속 잠에 빠져들게 하는 모양이다.


파도가 출렁이니 배도 따라 출렁였. 많이 흔들릴수록 괜히 불안해졌다.

가끔씩 들려오는 안내 방송에선 여전히 입도가 가능할지는 가까이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 하늘.. 울릉도에서 두어 시간 달려온 거 같은데 과연 입도할 수 있을지..


잠시 뒤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독도 경비대에게 간식을 주실 분들은 1층 매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어.. 독도경비대에게 전해줄 간식은 매점에서 파는 것만 줄 수 있는 걸까?'

매점 쪽으로 돌아보니 박스채로 뭔가를 사가는 분들이 보였다.

'경비대를 위한 간식을 사도 좋다는 건.. 입도할 수 있다는 뜻이려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다 들었는데.. 우린 멀리 사는 삼대가 어렵게 다 같이 왔으니 갈 수 있으면 좋겠구나!"

태극기와 무궁화가 그려진 스카프로 멋을 내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안 한가득 태극기 물결이었다. 포항 쪽 여객터미널에서도, 독도 여객터미널에서도 태극기나 무궁화가 그려진 예쁜 스카프를  팔고 있었다. 다양한 크기의 태극기와 태극기 문양이 그려진 머리띠 같은 나라 사랑 아이템들이 가득 있었다.

(Photo by 서소시: 태극기 스카프)

많은 분들이 독도를 향해 출발하기 전, 저마다 다양한 태극기 아이템으로 꾸미고 배에 올랐다. 독도 가는 배는 사람뿐 아니라  나라사랑하는 마음도 가득 싣고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태극기 아이템들과 태극기로 꾸민 수많은 사람들 모습에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예쁘다며 고른 스카프를 두르기도 하고 머리에 두건으로 썼다.




설레며 맘 졸이던 중 들려온 희소식! 잠시 후 입도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

독도의 동도에 입도하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단 20분..

도착과 함께 태극기 물결인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다.


"독도! 우리가 독도에 왔구나!"

독도경비대원 분들이 거수경례로 맞아 주시는데.. 우리가 정말 독도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우리 땅 독도에 한걸음 내디딘 거뿐인데 어쩜 렇게 설레고 뭉클한 건지..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하나 눈에 담아보려 애썼다.

(Photo by 사소시 ; 아름다운 독도)
(Photo by 서소시 ; 독도 숫돌바위)

눈부시게 맑은 바닷물과 자연이 만든 멋진 섬들을 둘러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때였다.

"으아악~~ " 비명소리였다.

'어.. 익숙한 목소리인데.. '

비명소리 나는 곳으로 돌아보니 맙소사 우리 아이들이었다.

이런이런..

둘째와 셋째를 향해 아이들 눈높이에서 무섭게 달려들고 있는 건.. 괭이갈매기들이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한 녀석은 아예 막내가 머리에 두른 태극기 두건 위에 서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Photo by 서소시; 몰려든 괭이갈매기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상황을 파악해 보니.. 둘째가 들고 있는 그 물건이 문제의 시작이구나 싶었다. 많은 괭이갈매기들의 시선은 오직 둘째의 손을 향해 있었다.

어젯밤 남편이 아이들에게 꼭 챙겨가라고 말했던 그것!!!

다름 아닌 새우깡 봉지였다.


아직 지도 않은 봉지를 둘째가 꺼내자마자.. 괭이갈매기들이 우르르 날아와 이렇게 둘러싼 거였다. 놀란 막내가 움직여봐도 하니 머리를 밟고 서있는 갈매기는 꿈쩍도 안 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달려가 새우깡 봉지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제야 한 마리씩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독도 괭이갈매기들은 새우깡 봉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이 정도로 적극적일 줄이야..

짧은 시간이었지만 괭이갈매기들에게 둘러싸여 혼쭐이 난 아이들은 많이 놀랐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우와~ 보기보다 많이 묵직했어요!"

보기에도 그랬단다 막내야..


독도에 와서 괭이갈매기들과 눈맞춤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어려운 걸 아이들이 경험했다. 그 와중에 생생한 그 순간을 포착한 막내.. 아이가 찍은 사진을 통해 독도 괭이갈매기들과 눈 맞춤 한번 경험해 보시길..

(Photo by 서소시 ; 독도의 괭이갈매기)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지만, 짧은 20분의 시간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아쉬워서 자꾸만 되돌아보고 되돌아봤다.


아이들에게 독도는 갑자기 달려들어 머리를 밟고 서있던 괭이갈매기로 기억될까.. 수많은 나라사랑 태극기 물결로 기억될까..

짧은 만남이 아쉬워서인지.. 달려드는 게 무서워 나눠주지 못하고 들고 온 새우깡 봉지만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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