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동화
노래 부르기
"메이, 가자~"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린양 메이는 빼꼼 창 밖을 내다본다.
창문 아래에 친구 준, 줄라이가 메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줄라이... 보기 싫어."
"오늘 합창 연습 있다며?"
메이의 중얼거림을 듣고 엄마가 묻는다.
"가기 싫어요."
"엄마도 설거지하기 싫다."
메이는 그릇이 쌓여있는 설거지 통을 물끄러미 보다가 결국 악보를 집어 들고 집을 나온다.
"준, 안녕. 줄라이... 안.. 녕"
"연습 많이 했어? 나는 후렴 부분이 잘 안 올라가더라."
준이 메이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한다.
아아아아아~
목을 풀어보지만 높은 음은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메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옆의 줄라이를 흘끗 쳐다본다.
-치. 역시 걱정 없다는 저 표정.
사실 줄라이는 아무 생각이 없을 뿐이다.
준이 그런 줄라이를 보며 묻는다.
"줄라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해?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좋아?"
"나? 난 그냥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집에서 연습해. 그리고. 목소리는 타고난 건데."
준이 동경의 눈빛으로 줄라이를 쳐다본다.
하지만 메이의 마음속은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며칠 전 합창연습이 있던 날.
"선생님. 아무래도 제가 이 부분에 코러스를 넣는 것은 좀..."
어렵게 고민하다가 꺼낸 말이었다.
"왜, 부르기가 어렵니?"
"네... 가사가 잘 이해되지도 않구요.. 그리고 줄라이 목소리가 좋아서 제가 따로 하지 않아도..."
"이건, 줄라이의 목소리랑 상관없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리고 메이 너 목소리가 잘 어울려서 선생님이 추천한 거고. 많이 부담스러워?"
"네. 저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준이도 저보다 더 잘하고. 잘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요."
"흠..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선생님이 다시 찾아봐야겠구나. 알겠어. 말해줘서 고마워."
선생님은 그렇게 메이를 이해하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정작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줄라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메이의 마음속으로 돌멩이 하나를 툭 던졌다.
"넌 할 줄 아는 게 뭐냐."
"뭐라고?"
"이것도 못한다, 저것도 못한다, 노래도 못 부른다, 준, 줄라이만 잘한다."
"사실이잖아. 줄라이. 네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부르는 거."
"응. 내가 잘하지."
"... 그래. 그러니까."
"그래, 그러니까."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하게 태어난 애는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
말이 길어져봤자, 저 잘난 척을 계속 들어줘야 할 뿐.
그때의 풀리지 않은 감정들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풀어내지 않음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린 상태다.
줄라이를 향한 미움이.
합창실에 도착하자 줄라이는 바로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로 가서 연습을 시작한다.
"줄라이는 정말 대단해."
준이 그의 노래연습 하는 것을 바라보며 감탄한다.
"뭐가 그렇게 맨날 대단하다고 그러냐 넌."
"응? 노래를 정말 잘 부르잖아. 듣다 보면 내 마음도 다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쟤는 겸손이 없잖아 겸손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몰라?"
"... 모르는데..."
"쳇. 언제까지 잘하나 두고 볼 거야."
"계속 잘할 거 같은데..."
"야!"
아직 아이들이 다 모이지도 않아 조용하던 합창실에 메이의 외침이 웅웅 울려버린다.
줄라이는 부르던 노래를 뚝. 멈추더니 메이, 준에게 다가온다.
-뭐지? 들렸나?
"메이."
"뭔데."
"너는 다 나쁜데 그중 제일 나쁜 게 뭔지 알아?"
"뭐라고?"
"정직하지 않다는 거야."
"내가 정직하지 않다고? 네가 겸손하지 않은 게 아니고?"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잘한다고 할 뿐이야. 너는 어때?"
"나도 네가 잘한다고 말해주잖아. 그럼 더 떠받들어줘야 돼?"
"아니, 너는 속으로는 네가 인정받고 싶으면서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억지로 나를 끼어파는 거잖아. 너의 얘기에."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네가 정말 잘하고 인정받고 싶은 게 뭔지 너 스스로 생각해. 나는 너한테 잘못하고 있는 게 없으니까."
"메이, 줄라이. 그만해..."
결국 준이 나서서 막아보기는 하는데, 둘이 무슨 말을 하는건 지는 도통 모르겠는 표정이다.
화가 난다.
어디서 시작된 화 인지는 모른다.
맞는 말이라고 하고 싶진 않다.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인정하는 건가?
내려놓았던 가방을 다시 낚아채듯 들고 메이는 합창실을 빠져나간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끝까지 잘난 척이지.
메이는 분통이 터진다.
"메이야. 그러다 너 터질 것 같아."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엄마가 메이의 퉁퉁 부은 입모양을 보며 말한다.
"엄마. 난 합창단 안 하고 싶어."
"그래."
"난 누구 닮아서 노래를 못하는 거야"
"아빠"
"엄마는 잘하고?"
"개구리 소년 ~개구리 소년~ 니가 울면 무지개 언덕에 비가 온단다~"
귀가 아프다.
"엄마, 그만."
"너한테 들으니 기분이 좋진 않네."
엄마가 씨익 웃으며 빨래를 갠다.
"재미없어. 노래도. 준도. 줄라이도."
"재미가 없는 애들이구나."
"가사도 와닿지도 않아. 그래서 더 하기 싫어."
"우리 메이는 가사까지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네. 엄만 생각도 못해봤네."
"응, 나라면 다르게, 더 곡에 어울리게 쓸 거 같아. 노래 부르는 사람도 가사에 취할 수 있게 말야."
"너는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단어 쓰는 게... 엄마 닮아 그런가."
"아무튼, 난 이제 합창반 안 갈꺼야."
"그래, 그럼 너는 네가 쓰고 싶은 가사를 쓰고 말이야."
"내가?"
"방금 네가 말했잖아. 너라면 다르게 쓸 수 있다고. 엄만 그게 엄청 궁금한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꼭 1등을 해야 할 수 있는 아이인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아이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엄마도 옛날엔 말이야~"
메이는 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들어간다.
"저건. 아빠한테 배운 거야. 저런 건."
잘 개켜진 빨래를 팡팡 치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방으로 들어온 메이는 빈 종이를 꺼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내가. 만들고 싶은 노래?
메이는 밤을 새우도록 종이에 끄적여 내려갔고,
생각이 막힐 땐 좋아하는 책을 꺼내어 좋은 글귀를 찾아 읽었다.
그러다 다시 글을 쓰고.
졸다가도 머릿속엔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 지나갔다.
-좋아, 좋아. 너무 좋아. 계속 쓰고 싶어.
합창대회
한 지역에 모여있는 모든 학교에서 참가한 합창대회.
각 학교의 합창단들이 부르는 노래는 끝이 났다.
곧. 심사와 발표.
두구두구두구두구.
나란히 앉아서 발표를 기다리는 메이, 준, 줄라이의 심장은 누가 더 할 것도 없이 마구 요동치고 있다.
'선생님, 제가 쓴 가사예요.'
몇 날을 망설인 끝에, 쭈빗거리며 내민 종이 한 장.
'연습에 안 나와서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하던 선생님은 그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고, 메이를 한번 꼭 안아주었다.
'우리 그럼 이 가사에 어울리는 노래도 한번 만들어 볼까?'
메인곡 외에 서브곡으로 선생님은 급하게 노래를 만들었고, 몇 개월을 쉬지 않고 연습했다.
물론 그 중심에서 전체 노래의 균형을 이끌어 온건 줄라이의 목소리였다.
메이는 자기도 모르게 가장 많이 들었던 줄라이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가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오늘은 그 모두의 노력의 결과를 듣는 날이다.
-선생님. 그리고 애들이. 나 때문에 망신당하면 안 되는데.
메이는 조금씩 후회가 든다.
그래도.
혹시...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3등부터 1등까지 모두 발표가 되었지만, 메이의 합창단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메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이 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준과 줄라이는 그 옆에서 메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 지금 노래 경연으로는 발표를 마쳤지만, 특별상 시상이 추가로 있겠습니다."
특별상?
"특별상 부분에, 중학생 아이가 직접 만들었다는 작사부문에서 수상이 결정되었네요, G학교의 '파란 하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끼얏호!
줄라이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선다.
"내가 뭐랬어?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지?"
"와. 대단하다 메이. 멋져. 축하해."
준도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내가...?"
메이는 엄마와 선생님 자리를 돌아본다.
둘은 이미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줄라이. 우씨... 고마워."
"당연히 고맙지. 얼른 내려가 상 받아와! 다 내 덕분인 거 잊지 말고."
메이는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너는 말만 했고. 잘 한 건 나지."
사람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응원을 들으며 메이는 앞으로 당당히 걸어 나간다.
-엄마. 나 이게 정말 좋아.
-엄마도 네가 좋아.
(끝)
부연: 이름설정
메이(May, 5월) :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불안한 변화의 시기. 성장의 문턱.
준(June, 6월) : 가장 안정적인 계절, 무심하고 계산없고 맑고. 연결하는 달.
줄라이(July, 7월) : 여름의 절정, 에너지 최고조. 가장 빛나는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