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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원

by 김서연
물의_정원1.jpg


물의 정원에 갔다. 가는 길이 많이 막혔다. 그래도 갔는데 당연히 꽃은 없었다. 먼 산은 울긋불긋했지만 물의 정원에 있는 나무들은 초록색이 많았다. 이파리들은 물기를 잃고 희끗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물 가까이에 있는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곧 나뭇잎은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겨울을 날 것이었다.

바람이 없어서 물은 잔잔했다. 물에 비친 하늘은 파랬고 구름은 음영이 더 짙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산책했다. 더러 큰소리로 계속 얘기했던 사람은 귀가 안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강아지에게 발레리나 스커트를 입힌 사람들 대여섯 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후드가 달린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되돌아오는 길에 딸기 농장이 보였다. 그 앞, 작은 베니어판 위에 시금치 한 소쿠리, 직접 만든 딸기잼 몇 병, 방울토마토 두 팩이 있었다.


“방울토마토 얼마예요?”

내가 물었다.

“한 팩에 3천 원.”

비닐하우스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무릎을 펴고 일어서며 말했다.

“두 개 사면 싸게 해 주나요?”

내가 물었다.

“싸게? 어떻게 싸게 해 줘?”

할머니가 물었다.

“……”


솔직히 오천 원쯤 생각했지만 이미 육천 원을 꺼내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가 돌돌 말아두었던 까만 비닐을 제치고 더 안쪽을 뒤적였다. 분홍색 모자 밑으로 하얀 머리카락이 보였다. 할머니는 000 빵공장이라고 쓰여 있는 반투명하고 예쁜 비닐봉지에 방울토마토 두 팩을 담아서 내게 건넸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농산물을 조금씩 사 온다. 다녀온 다음날 입이 까맣게 되도록 오디를 먹었고, 산딸기를 먹었고, 무화과를 먹었다. 비닐에 넣지 않고 키운 동그란 호박을 썰어 된장찌개를 끓였고, 생들기름을 넣고 비빔밥을 해 먹었다.

여행엔 그런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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