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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한 포기의 맛

by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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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에서 시든 겉잎은 떼어냈다. 그다음 이파리부터는 배춧국을 끓일 것이다. 굵은 멸치로 국물을 낸 다음 된장을 풀고 마늘을 넣고 배춧잎을 손으로 툭툭 잘라 넣었다. 배추 줄기가 물렁해지도록 약 불로 푸욱 끓이는 걸 좋아한다. 고갱이가 나왔다. 쌈으로 먹게 잘 씻어 놓았다.


어렸을 때 김장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는 동네잔치였다. 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우리 집은 200포기 정도의 김치를 했다. 커다란 교자상 두 개를 나란히 펴고 그 위에 비닐을 깐 다음 씻은 배추를 차곡차곡 쌓아서 물을 뺐다. 돗자리를 깐 마당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무채를 썰었고 칼자루 끝으로 생강을 다졌으며 쪽파를 썰어 큰 그릇에 담았다.

엄마는 마당 한쪽에 석유곤로를 놓고 돼지고기를 삶았다. 할머니는 작고 향긋한 굴을 씻어 반은 금방 먹을 깍두기에 넣었고 나머지는 보쌈으로 먹을 김치 속에 넣고 버무렸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가끔씩 대문 안으로 들어와 아주머니들이 볼이 미어지도록 넣어주는 배춧속 쌈을 받아먹고 입술이 빨개져서 고무줄놀이를 하곤 했다.

이북 사람이었던 할머니는 젓갈을 넣지 않고 김치를 담근 다음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 물을 부었다. 엄마는 따로 젓갈을 넣고 경상도식 김치를 만들어서 작은 항아리에 넣었다. 나는 할머니의 김치 속에 큰 덩어리로 들어 있던 무를 좋아했다. 젓가락으로 쿡 찍어 들고 밥을 먹고 아삭아삭 무를 먹었다.


“엄마, 배춧국에 청양고추 넣어줘.”

첫째가 말했다.

“아빠 매운 거 못 먹잖아. 먹을 때 넣게 따로 썰어뒀어.”

내가 대답했다.


배추전도 떠올랐지만 얼른 털어버렸다. 다음에 또 배추를 산다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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