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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by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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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딱 안 본 만큼 늙어 보였다. 아버지는 성실 정직한 분이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다. 회사를 다니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친구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돈과 친구를 잃었다. 대단한 역전은 타고난 성실과 정직으로 거머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독기라고는 품어본 적이 없는 분이다 보니 인상도 인품도 좋다.

9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혼자 사신다. 아버지의 집은 깔끔하고 질서 정연하다. <만개의 레시피>를 보고 국과 반찬도 직접 만든다.

어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우리 부부와 동생에게 건조기로 직접 말린 바나나와 고구마 말랭이, 당근 등을 싸주셨다.



아버지와 엄마는 선으로 만났다. 서울에서 엄마가 사는 김천까지 온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어머니, 날 잡고 가겠어요.”


선을 보는 내내 조용하던 아버지가 말했다.

선보는 자리에 함께 있었던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깜짝 놀라 하하 웃기만 하셨다.

코가 오뚝한 아빠가 선보는 곳으로 들어와 코트를 벗는 동안 엄마는 아빠를 살짝 보았을 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빠 역시 쑥스러워서 엄마 얼굴을 계속 바라보지 못했고, 앞으로 마주 잡은 손만 보았다. 엄마는 손이 예쁜 사람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뽀얗고 고운 손을 보며, 저 손을 잡고 평생을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아빠는 약혼 날을 잡고 서울로 올라갔다. 다음 해에 엄마는 누나가 많은 4대 독자인 아버지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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