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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머니

by 김서연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그림일기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동생과 함께 누워 있는 방문이 열리고 빛이 나는 아메바 같은 게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첫째가 “호러머니!”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처음에 그게 ‘홀어머니’인가 생각했다.

“이게 뭐야?”

내가 물었다.

“호러머니.”

첫째가 대답했다.

“호러머니?”

“엄마가 밤 열 시가 되면 호러머니가 나온다고 했잖아.”

“……아!”

그건 ‘호르몬’이었다. ‘성장호르몬.’ 첫째는 유독 잠이 없었다. 유치원생이 열두 시가 가깝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그래서 밤 10시가 되면 성장호르몬이 나오니까, 키가 크려면 그전에 자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아이가 그 말을 그렇게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댓 살 때 첫째의 장래 희망은 개구리였다. 팔짝팔짝 점프도 하고 수영도 잘하니까, 나름 수륙양용의 삶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 아이가 드물었다.

중학교 때까지 잠을 잘 안 자던 아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틈만 나면 꿀잠을 잤다. 지금은 키가 큰 편이다. 그리고 평범한 고집쟁이가 되었는데 남편은 꼭 나를 닮았다고 한다.

“엄마, 나 비혼 주의자야.”

첫째가 말했다.

“쟤는 것과 속이 다르다니까. 겉모습만 나지, 나머지는 꼭 당신이야.”

화려한 청춘을 보냈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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