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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by 김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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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교동도에 다녀왔다. 먼 산과 가로수는 겨울 분위기를 풍겼다. 도로 옆으로 빈 논이 이어지다가 주황색과 파란색의 낮은 지붕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고, 또다시 빈 들이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하늘에는 겨울새들이 줄을 지어 날아갔다.


주말 드라이브는 자주 다닌다. 동행은 거의 남편이고, 대단한 건 없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근사한 카페를 일부러 찾아가지도 않는다. 평소보다 많이 걷고 속 편한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싶다기보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카페를 찾는다. 그렇게 들어간 카페에서 한동안 앉아 있기도 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휴대폰을 보고 책을 읽기도 하는데 각자 다른 공상, 망상, 몽상에 빠져 있어도 서운해 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사진은 안 찍는다. 둘이 찍지도 않고 서로 찍어주는 법도 없다(남편은 이따금 내 웃긴 모습을 찍는다). 어쩌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장면이나 느낌을 기억하고 싶어서다.


어떤 유명 소설가는 사진보다 소리를 녹음한다고 했다. 바람 부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 새소리, 주변의 소음 같은 걸 녹음해두면 글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을 불러내고 싶을 때 유용하다고.


그 말을 들어서인지 나도 그런 녹음이 몇 개 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벳부에서 전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벳부 역입니다. 곧 000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같은 딱딱한 멘트가 흘러나오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소리가 흘러나왔다.

"벳부우우우, 벳부우우우…"

곱지만 어딘가 처량한 여자 목소리로 뱃고동 소리같이 뒤를 길게 늘여 말하고 있었다. 그 안내음을 듣고 나는 들어오는 열차를 타지 않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그 소리를 녹음했다. 스위스의 기차역에서도 녹음을 한 적이 있는데, 지나가던 한국 단체 관광객들의 소리도 들어 있다. 별거 아닌 그런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보다 더 강렬하게 마음을 자극하곤 한다.


교동도에서 나와 강화도로 갔다. 오후 다섯 시가 넘자 청색 하늘에 먹물 같은 어둠이 가만가만 섞이기 시작했다. 홍시 같은 노을이 낮게 가라앉아 붉은 띠를 이루고 조금씩 더 진해져 갔다. 11월 말의 저녁은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차분하게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하지 않고 외포리에서 홍가리비를 산 다음 찜을 해서 포장했다.

해안선을 따라 환하게 불을 밝힌 카페와 식당과 펜션들이 즐비한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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