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은색 플라스틱 가방을 들고나갔다.
“가방 보고 넌 줄 알았어.”
H가 말했다.
“그 가방, 이제는 장바구니로 써도 안 아깝겠다.”
M도 거들었다.
한창 유행할 때는 관심도 없다가 3년 전, 삿포로의 매장에서 마침 있던 그 가방을 들어보고 바로 사 왔다. 그 이후로는 그 가방만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벼워서 좋았다. 비를 맞아도 신경 쓰이지 않고, 뭐가 묻어도 쓱쓱 닦으면 되니 결벽증이 있는 내 성격과 잘 맞았다.
그 가방을 총애하기 전에는 고백하건대, 명품을 사랑했다.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긴 할부로 몇 개의 명품을 장만했다. 에르메스나 샤넬은 넘사벽이었지만 구찌나 프라다, 루이뷔통 정도는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 가방들을 나보다 더 아꼈다. 명품 백은 당의정처럼 잠깐씩 나의 형편없는 자존감을 달콤하고 매끄럽게 코팅해 주곤 했다.
가성비 면에서 내게는 좀 회의적이지만 명품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과 취향에 관한 문제인 것 같다. ……사실은 아직도 근사한 물건을 보면 눈이 돌아간다. 무욕, 초연, 초월, 초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지겨워하지 않고 플라스틱 백을 3년 이상 들고 다닌 나를 가끔 수줍게 칭찬한다.
아무려나 이제 내게 가죽 가방은 무겁다. 활자 중독자로서 책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가끔은 노트나 아이패드, 필기구, 스카프 따위도 넣어야 하는데 가방까지 무겁다면 감당할 수 없다. 힐과 얇은 모직코트 따위를 포기했을 때 가죽 가방도 물 건너간 것이다.
어쩌다 나의 시그니처 백이 된 은색 플라스틱 백은 언제나 화장대 옆 작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필요한 건 이미 가방에 다 있으니, 나갈 준비를 한 후 휴대폰만 가방에 넣으면 된다. 편의성이 다가 아닌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