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서연 Jan 18. 2022

눈이 온 날



  저녁 여섯 시쯤 눈이 잠깐 내렸다. 환기를 위해 베란다 창을 열었다. 땅 위에 눈이 엷게 덮여 있었다. 창가에 서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겨울 냄새가 났다. 어떤 냄새는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한번 천천히 호흡했다. 좀 전에 느꼈던 냄새는 사라지고 코끝까지 몰려왔던 기억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한기를 느낀 나는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둘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아이들에게도 후드가 달린 긴 오리털  패딩을 사 입혔다.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던 어느 날 아침, 나는 둘째와 함께 유치원 차량이 오는 곳으로 갔다. 그곳엔 둘째의 친구인 여자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그 아이는 허리가 잘록한 모직코트 속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하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ㅇㅎ 안 춥니?”

  후드를 씌우고 목에 모직 목도리까지 둘러 펭귄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딸의 손을 잡은 내가 물었다. 

  “우리 엄마가, 예쁜 여자는 추위쯤은 참을 수 있어야 한댔어요.”

  ㅇㅎ의 야무진 대답을 들은 나는 “아……, 그래?” 하고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 다녔던 그 아이의 엄마는 주로 정장풍의 여성스러운 옷을 입었다. 날씬하고 예쁜 여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캐주얼하고 실용적인 옷을 주로 입는다. 고등학교 때도 추운 날은 교복 속에 체육복을 입고 씩씩하게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소녀에서 ‘아가씨’를 뛰어넘어 그냥 아줌마가 돼버린 것만 같다. 물론 힐을 신고 다니기도 했지만 성숙하거나 섹시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때 모직코트를 입고 다녔던 꼬마는 어떤 아가씨로 자라났을까? 그리고 그 꼬마의 엄마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여전히 일일일 팩을 하고 피부과에 열심히 다니며 고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까? 나처럼 고스란히 나이 들고 있지는 않겠지. 






작가의 이전글 그래, 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