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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Mar 16. 2022

외출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산책을 하고, 치아시드를 사고, 스타벅스에 갈 예정이었다. 소설책 한 권과 노트를 챙겼다. 

  햇살은 따사롭고 공기는 달콤했다. 산수유는 쥐고 있던 주먹을 펴고 노랗고 여린 손가락을 뻗어 봄을 환영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보니 스타벅스 안에 빈자리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중엔 코로나 전에 내가 즐겨 앉던 자리도 있었다. 약속이 없는 날은 매일 그곳에 앉아 책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를 배경음 삼아 멍하니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고 뭔가 끼적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심해진 후 누군가를 만날 때 외에는 혼자 카페에 거의 가지 않았다. 나로 인해 가족이 피해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조금씩 마시며 책을 보았다. 뭔가 불량식품 같은 행복이 찰랑거렸다. 

얼마 전, 당뇨인 걸 알게 된 후 나는 너무 유기농으로만 살고 있다. 찐 채소를 먹고 두부를 먹고 콜라비를 먹고 비트를 먹었다. 모든 식사는 직접 만들어야 했다. 모든 소스와 양념도 마찬가지였다.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반찬가게, 밀키트처럼 내게 간결한 기쁨을 주던 것과 부지불식간에 이별을 고했다. 짜지도 맵지도 않은 음식을 꼭꼭 씹어 삼키며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매사가 흐리멍덩하고 밋밋하게만 느껴졌다. 

  정답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오답을 말하곤 하던 호기로운 시절은 지나갔다. 달콤 쌉싸름한 게 인생이라면 달콤한 맛은 가고 오직 쌉싸름한 맛만 남은 것이다.      


  그래도 뭐, 집이 아닌 곳에서 봄볕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단편 하나를 다 읽으면 공원을 지나 치아시드를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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