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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

나다니엘의 삶

by 안이서

강률의 방을 나오자 아래 중앙 광장에서 여러 사람의 통곡 소리가 들렸다. 왜 분위기가 저리도 처참한 건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참견할 때가 아니었다. 세라이아는 아갸를 승강기에 태웠다. 둘은 에덴스 아크의 가장 위층, 13층에서 내렸다.

그곳은 나다니엘, 영성지도자 안이서의 숙소가 있는 층이었다. 몇 개의 숙소가 더 있었지만, 지금 그 층의 숙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엘라라 뿐이었다. 방종을 택한 다른 사람들은 엘라라의 눈치가 보여 다른 층의 숙소로 거처를 옮긴 지 한참 전이었다.


세라이아와 아갸는 나다니엘의 방문 앞에 섰다.

나다니엘의 방은 굳게 잠긴 채 자리를 지켜왔다. 그 방문 손잡이에는 나다니엘의 지문이 입력돼 있었다. 그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역이었다. 그 안의 구조가 어떤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세라이아의 추측이 맞다면 이 문은 아갸의 지문에 반응해야 한다. 세라이아는 아갸의 손을 문손잡이에 올려주었다. ‘딸깍!’ 문이 열렸고 동굴 같은 어둠이 자태를 드러냈다. 외부의 공기가 침입하며 바닥에 누워있던 놀란 먼지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세라이아가 처음 맡아 보는 향의 조합들이 안에서 밀려나왔다. 바닐라와 아몬드가 섞인 달콤 고소함 속에 젖은 나무의 퀴퀴한 향이 오묘하게 섞인 냄새랄까?

세라이아는 아갸의 손을 잡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조명.”

세라이아가 인공지능에게 말하자 은은한 불빛이 켜졌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세라이아의 눈이 확장됐다. 네 벽에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데 어림잡아 수천 권은 돼 보였다. 세라이아가 맡은 독특한 향은 이 종이책에서 나는 것 같았다.

전생에는 이런 종이책을 쉽게 접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생에서는 실물로는 처음 본다. 에덴스 아크의 인간들은 필요한 정보는 중앙 컴퓨터실에서 검색을 한다. 그럼 홀로그램과 전자 서적 형식으로 접하는데, 컴퓨터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세라이아처럼 우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우주선 외의 것은 아는 바가 없어 무엇을 검색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살았기 때문이다.

세라이아는 처음 보는 광경에 신경을 뺏기지는 않았다. 그는 아갸를 바라보았다. 아갸는 그 장소가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책을 훑어 지나가는 손길이 다정해 보였다. 나다니엘이었을 때 직접 방을 설계하고 꾸몄으니 영혼의 어딘가에 새겨진 기억이 그녀를 이끌고 있는 게 맞겠지.


“서루야, 잠깐 여기 앉아 볼래?”

세라이아는 아갸를 불러 소파를 가리켰다. 그녀는 익숙한 방의 경계를 넘어, 아갸를 우주의 심연으로 이끌려 하고 있었다.

아갸는 조심스레 앉았다. 여전히 인간과 다른 모습의 자신을 원망하며,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무게가 더욱 그녀를 짓눌렀다. 세라이아는 눈을 피하는 아갸의 얼굴 앞으로 몸을 낮추어, 그 시선을 다정히 붙잡았다.

“네가 나다니엘의 몸을 떠났을 때 닿았던 곳으로 보낼 거야. 거기서 넌 진실을 보게 될 거고, 더 이상 이렇게 아프지 않을 거야. 내 말 믿지?”

그 말은 언어를 넘어 마음의 결로 파도처럼 스며들었다. 세라이아의 가슴 가득한 사랑이 따뜻한 빛이 되어 아갸의 영혼에 닿았다. 저항할 수 없는 위안이었고, 아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이아의 손끝이 그녀의 눈꺼풀을 스치자, 세상이 흔들리며 사라졌다. 몸은 돌처럼 무거워져 심연으로 가라앉았고, 눈꺼풀은 어떤 힘에도 열리지 않았다. 어둠이 바다처럼 몰려와 의식을 삼켰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끝없는 허공. 소리도, 빛도, 무게도 없는 공간. 자신은 이미 아갸가 아니었다.

그곳에선 어떠한 감정의 너울거림도 없었다. 단지 [인식]만이 있었다. [나]이면서 동시에 우주 전체인 그것.

[인식]은 자연스럽게 말했다.

“빛이 있으라.”

그 순간 어둠의 중심에서 빛이 솟구쳐 나와 사방으로 번졌다. 빛에 밀려 어둠은 사라지고, 무한한 공간이 찬란한 색들로 물들었다. 수천억 개의 별들이 비처럼 떨어지고 영혼이 별들의 비에 환호로 흠뻑 젖어갈 때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고요는 잠시의 휴식이다. 휴식이 끝날 때 우주를 찢는 굉음이 울리며, 하늘과 땅이 갈라졌다.

[인식]은 땅으로 빨려 내려가 거대한 구조물 앞에 서 있었다. 에덴스 아크 개발 센터였다.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식]은 어느새 에덴스 아크 자신의 숙소에 들어와 있었다. 책상 위 컴퓨터 화면 속에서 한 중년 여인이 다정한 눈빛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림이 번졌다.

‘안이서…….’

그제야 [인식]은 이것이 방금 끝난 나다니엘 위트모어의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에 대한 무지한 믿음으로 생긴 갈등이 끝없이 상대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땅, 지구.

내 밖의 존재이건, 내 안의 존재이건, 세상을 사랑으로 조화롭게 빚어내는 에너지를 가진 신만이 진실 되다.

갈등과 몰이해, 증오를 일으키는 존재는 ‘신’의 가면을 쓴 거짓말쟁이 악마이다. 정보의 형태로 존재하는 그것은 신의 섭리에 대한 정보에 가라지의 씨로 뿌려져 있다.

거짓말쟁이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인간들은 진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구에 남은 건 영원한 갈등뿐이다.


나다니엘 위트모어는 타락한 땅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다른 행성으로 가 새로운 신세계를 만들려고 했다. 갈등이 없는 세상.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


거기까지 떠올린 [인식]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 지구에 있었고, 그와 노바리스 에테리아로 같이 떠나기로 했지만, 그 전에 사랑하는 사람, 이서가 죽었다는 소식에 생을 마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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