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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바다2

미래의 모습

by 안이서

[인식]은 우주 정보의 바다에서 지난 생의 모든 순간들을 찾아냈다. 또한 이 방의 문을 열면 노바리스 에테리아의 미래가 그려질 것이라는 것도 본능처럼 알 수 있었다. [인식]은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식물들로 장악된 에덴스 아크의 실내 모습에 [인식]은 멈칫했다. 깨진 유리를 비집고 들어온 덩굴은 핏빛처럼 벽을 물들였고, 보랏빛 줄기는 땅을 찢고 솟아올라 천장을 떠받치듯 하늘로 뻗어 있었다. 그 사이로 몸에서 빛을 흩뿌리는 벌거숭이 새들이 ‘뾰롱, 뾰로롱’ 울며 날았다. 두 발로 서서 나무의 열매를 따는 긴 털이 코트처럼 드리워진 짐승들은 앞부분은 털이 듬성듬성 있어 지구의 유인원과 비슷했다. 에덴스 아크는 노바리스 에테리아 생물들의 서식지가 되어 있었다.

‘인간들은……?’

[인식]이 가장 먼저 궁금해 한 것은 이주민들의 생존 여부였다.

“여기 인간은, 더 이상 없어.”

남자 인간의 목소리가 [인식]에게 들렸다. 그리고 남자 인간의 손이 [인식]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인식]이 맞잡은 두 손을 내려다보며 순식간에 서루의 모습이 되었다.

서루는 고개를 들어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세라이아…….”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리워했고,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지난날의 모든 서러움은 눈 녹듯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랑은 더 깊어지고, 그리움은 더 탐욕스러워져 서로의 눈을 삼키듯 붙들었다. 마치 상대를 영원히 안에 가두려는 듯, 보고 또 보았다.


두 사람은 지구에서 처음 만났던 시절처럼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세라이아, 서루. 에너지체 상태에서는 몸을 탐하고픈 욕망은 없다. 대신 감성이 오르가즘을 느끼듯 고통스러운 황홀감이 지속됐다. 서루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억누르며 세라이아의 어깨에 기댔다.

“이 상태로 영원히 있을 수는 없겠지?”

육체가 죽은 후, 영혼은 운명의 순리에 따라 자신의 에너지 파동에 맞는 몸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환생의 원리이다.

“신께서 우리에게 재회의 기쁨을 누리라고 시간을 좀 주신 건가봐.”

서루는 기댔던 머리를 들어 세라이아를 보았다. 자신을 향한 그의 미소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환생을 하면 기억을 잃는다.


세라이아와 서루는 주변에서 잠든 유인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인간들의 영혼이 그들의 육체 안에 들어 있다. 인간성을 잃지 않은 이주민들은 죽은 후 지구로 날아갔지만, 타락한 인간들의 영혼은 그들의 에너지 파장에 맞는 유인원들로 태어났다.

그 영혼들이 인간이었을 때(아주 유능하고, 미래에 대한 꿈으로 새 세계에 대한 탐험심으로 가득했던, 그런 인간이었을 때) 나다니엘은 자신이 직접 이주민 희망자의 면접을 보고 선별했다. 나다니엘은 그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했다.

지금 동물로 퇴보한 그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뭉개지고 영혼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내 잘못이야.”

서루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들을 버렸어. 나만 믿고 따라 온 사람들인데…….”

“네 잘못이 아니야.”

세라이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이서의 죽음에 받은 충격으로 나다니엘의 세포가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이건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의 이 모든 일 또한 신의 계획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때 세라이아는 번뜩였다.

“아, 신의 뜻이…….”

그는 천천히 말했다.

“우리 종족은 지구에서 그곳의 유인원과 우리의 유전자를 결합했었어. 유인원의 지능을 개발하려고 한 거였어. ‘신의 뜻에 어긋난다, 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과학적인 발전이다.’ 라는 논쟁이 있었지.”

세라이아는 서루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지구의 인간들이 영적으로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깨달았다.

유인원에게 분별력을 준 것도 역시,

“신의 뜻이었어. 신의 본성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며, 더 아름답게 발전하는 거니까.”

그는 불빛 속 유인원들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뒤로 퇴보하는 건, 우주의 섭리로 보자면 ‘죄’야. 신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너희 자유의지로’ 이 세상을 바로 세우라고 과제를 주신 거야.”

세라이아의 말을 곱씹던 서루는 잠시 후 한숨을 쉬었다.

“신의 뜻이 그런데, 왜 너희들은 인간이 신성을 회복하는 걸 방해한 거야?”

서루가 지구에 있던 신족들을 원망하는 건 당연했다. 일부 신족은 인간이 그들처럼 신성화 되는 걸 반대했었다. 신을 향한 인간들의 숭배, 두려움, 사랑 등의 에너지가 그들에게 양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라이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신족이 인간계에 태어나 올바른 가르침을 주고 가면, 그들은 도둑처럼 인간들 사이에 끼어들어 가르침을 오염시켰다. 그런 방해만 아니었다면 인간들이 깨어나는 시간은 훨씬 단축됐을 것이다. 서루가 말했다.

“나다니엘로 살 때 나는 신의 가르침이라는 책들은 거의 다 봤을 거야. 노력을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하다못해 성경 속 예수가 유일한 신인지, 신성을 회복한 인간인지도 분간할 수 없더라.”

그리고는 세라이아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난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내 안의 신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었어. 유일한 부끄러움은 살아생전 내 안의 신을 만나지 못한 거지. 그리고 널 너무 늦게 만난 거.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방황도 그렇게 길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 또한 우주 신의 큰 계획 안에 있는 거라면, 긴긴 외로움이나 방황에 대해 원망하지 않아.”

세라이아와 서루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각자 어느 육체로 들어가게 될 지도 알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눈으로 말하며 미소 짓는 서루를 보자니 세라이아의 마음이 미어졌다. ‘어느 몸으로 들어가건 상관은 없는데, 널 잊을 게 너무 두렵다.’는 그 마음도 세라이아에게 오롯이 전해졌다.

“내가 널 기억할게. 넌 내 기억 버튼이니까. 네가 어떤 존재로 태어나건 만나기만 한다면 난 널 기억할 거야.”

그리고 두 영혼은 천천히 서로를 감싸 안았다. 에너지가 흘러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이제 시간이 됐다.

하나가 됐던 영혼은 다시 둘로 나뉘어 각자 가야 할 곳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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