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구한말 조선의 힘이 거의 없어졌을 때에 경복궁은 박람회장으로 쓰였고,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어
한반도 유일의 동물원이자 벚꽃놀이 장소로 변했다.
덕수궁도 반 이상이 헐려 일본인 자녀를 위한 학교터가 되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자 지은 제단 원구단도 헐려 그 자리에 철도호텔(조선호텔의 전신)이 세워졌고,
서대문도 서울 성곽의 대부분과 함께 헐리고 남대문과 동대문도 헐릴 뻔했다가 겨우 남았다.
종묘와 사직은 공원이 되었다.
일제는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조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공간들을 없애거나 변형시켰다.
1925년 남산에 거대한 신궁을 세워 결코 근대적이지 않은 일본적인 정신문화의 본산으로 삼았다.
이 신궁은 1945년 일본 패전 직후 일본인들 스스로가 불태웠다.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곳이 한국인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1911년 병합 직후에 종래의 구리개길을 새로이 길고 번듯하게 닦았다.
한반도 최초로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는 도로였다. 구리가 햇빛에 비친다는 이름의 구리개는 조선인 누구라도 생소한 고가네초라 이름을 바꾼 뒤 이 길에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 지점이란 이름의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 이 회사는 이후 수없이 많은 한국인의 토지를 강탈하여 일본인들의 배를 불려주는 본거지가 되었다. 해방 후 이 길은 100만 대군을 무찌른 을지문덕장군의 이름을 기리며 을지로가 되고, 동척 건물은 헐려 지금 그 자리에 하나은행 본점이 들어서 있다.
일본은 근대화를 이유로 조선의 전통이 깃든 건축물들을 마음대로 개조하고 헐었으나 남산에 제사를 지내는 신궁을 세움으로써 그들의 행위가 조선의 근대화에 있다는 주장은 다 거짓부렁이 되었다.
일본은 조선의 근대화가 목적이 아니었다. 근대화가 목적이었다면 궁 앞에 철길을 내는 무자비함을 드러내서는 안되었다. 근대화라는 가면은 단지 힘으로 뺏은 이 땅을 자신들이 이득을 위해 편리하게 사용하기위한 수단 이었을뿐이다. 일본 덕분에 조선이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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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화제가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하고 있지만 자유로운가운데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몇군데 정해놓았다. 나라의 정신이 깃든 곳, 그 혼을 지키며 후손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나라의 얼을 지켜주기 위해 정한 곳. 예를지키며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수있는곳...그런곳들은 출입은 고사하고 철저한 통제가 되며 1년에 두 번 나라의 제사가 있을 때야 출입이 가능했던 종묘도 그런곳중의 하나이다. 하물며 종묘에 들어갈 때는 현직의 임금조차 가마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갔다. 그렇게 해야 후손들이 나라를 귀히 여기고자 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손에는 잡히지 않는 무형의 유산이며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은 크나큰 국익이기에 그러하다.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은 민족의 자존심이고 얼이며 정신이다.
내가 가보고 싶다고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지인들과 차타고 들어가 커피나마시며 휘젓는 곳이 아니다. 남편과 단둘이 아무도 모르게 왕후의 침실에 들어가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당신들이 그곳을 드나드는 행위가 우리국민들에게 자존감을 높이는것이었나?아니면 조금이라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나?
설마 마지막왕비의 침실에 우리가 모르는 무슨 짓이라도 해놓은 것이 아닌가? 수십대의 카메라가 지켜보는데도 손바닥에 "왕"자를 써놓고 방송했던 그들이다. 그리고 고의가 아니라고 뻔뻔하게 이야기하던 그들이다.
그 시대는 힘이없어서 다른 나라사람들이 우리의 정신을 짓 밟는것을 지켜볼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동포인 당신들이 먼저 우리들의 정신을 짓이기고 싶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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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 알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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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아주 좋은 예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