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끝나고 아이 입에서 "학교가 싫어."라는 말이 나왔다. 원래 학교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무심코 넘겼다. 코로나로 작년엔 단축 수업과 온라인을 병행했기에 장시간 학교 수업이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나도 중학교 때 학교가 그리 재밌진 않았었고..
그렇게 가끔 툭 내뱉듯이 했던 말. 한 달째 며칠에 한 번꼴로 느닷없이 하는 말 "학교가 싫어."
나: 학교가 싫어? 일 학기엔 그런 말 안 했는데 무슨 힘들 일 있어?
아이: 재미가 없어.
나: 수업이? 아니면 친구들이랑 좀 그래?
아이: 그냥 다 싫어. 다 귀찮아.
그러다가 두어 번 더 학교 싫다는 이야기가 나오길래.. 진지하게 물었다.
나: 우리 아들이 학교를 싫어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공부?
아이: 아니. 친구들은 괜찮아.
나: 그럼?
아이: ** 선생님이 나만 미워해.
나: ** 선생님이? 엄마가 볼 때 네가 미움받을 만한 아이가 아닌데.. 왜 선생님이 너를 미워하셨을까?
아이: 몰라. 나만 지적해. 들어올 때마다. 계속. 한두 번 말씀하시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혼을 내. 갱년기거나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건가.... 애들 많은 데서 나만 자주 지적해.
나: 어떤 걸 지적해?
아이: 연필 앞쪽으로 안 잡는 거랑 글씨 큰 거. 예쁘게 안 쓰는 거랑 한 번은 딴짓했다고 혼나고.
나: 딴짓?
아이: 응. 친구랑 얘기 한 적 있었어. 어제는 손을 밖으로 안 빼고 책상 밑에 두었어. 애들이 핸드폰 자주 하니까 내가 그런 줄 알고 혼냈어.
나: 그럼 뭐 했어?
아이: 색종이 만지고 있었어.
나: 그건 네가 잘못했네. 근데 연필 자세까지 디테일하게 혼내니까 싫긴 했겠다. 딴짓하다가 걸린 건
처음이라도... 선생님 입장에선 말씀하실 수 있는 거고..
아이: 응. 두 가지 내가 잘못했어. 책상 밑에서 색종이 만진 거랑 친구랑 말한 거. 근데 연필 잡는 거 계속 들어오실 때마다 나한테만 계속 그래. 글씨 큰 거랑. 계속 들으니까 지겹기도 하고... 계속 혼나.
나: 친구들 많은 데서 지적 계속 받으니까 좀 민망하고 창피하긴 했겠다. 선생님께서 너한테만 계속 그러셔. 언제부터?
아이: 응. 방학 지나고 이번 달에 매번... 그 전에는 혼난 적이 없었어. 나만 찍힌 거 같아.
나: 엄마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한번 물어봐 줄까? 선생님이 너를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잖아.
아이: 응.. 모르겠어. 생각해볼게.
그 후에도 아이는 연필 자세로 지적을 여러 번 받았고 글씨체 때문에 몇 번 더 혼이 났다. 아이가 도움을 청해서 담임선생님께 **선생님과 통화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다. 그동안 학교 선생님께는 전화 자체를 하지 않는데 이번엔 그냥 모른 척하기가 그랬다.
아이가 도움까지 청했으니..
**님께서 전화를 주시겠다고 하셨으나 계속 미뤄졌고 하루가 지났다.
'왜 전화를 하신다고 하시곤 안 하실까?'
2일이 지나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꼭 좀 연결시켜주셨으면 좋겠다고..
알고 보니 **선생님께서는 학부모의 전화가 다소 불편하시고 당황스러우셨던 거였다.
이해가 되었다. 나도 처음으로 거는 거니까. 선생님 입장에선 어떤 학부모 인지도 모르고...
드디어 **선생님과 통화가 되었다. 방어적인 목소리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선생님: 무슨 일로 거셨나요?
솔직한 게 최고. 그냥 바로 말씀을 드렸다.
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갑자기 전화드려서 많이 놀라셨죠? 다름이 아니라 아이가 얼마 전부터 학교가 싫다고 해서 그냥 무심코 넘겼거든요. 그런데 ** 선생님께서 자신을 싫어하시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일이 없다고 말은 했지만 아이는 그렇게 느끼고 있고 저에게 도움을 청해서.. 엄마가 한번 물어봐주겠다고 했어요.
많이 당황하셨죠?
선생님은 자신은 미워한 적 없고 오히려 예뻐하는 아이였다고.. 최근에 아이가 1학기보다 집중을 덜 하길래 걱정해서 지적을 했던 거라고 하셨다. 관심이 있기에 지적도 한 거였다고 하셨다.
선생님: 근데 아이가 많이 어리네요?
나: (당황) 네? 중학생이니까 어리죠.
선생님: 아니요. 선생님한테 지적받은 걸 엄마한테 말하다니.. 중학생이 보통 안 그러거든요.
아이가 어리네요. 초등학생도 아닌데..
나: (마음에 걸림이 있었으나 침착하게 말을 했다.)
아이가 중요한 일은 부모에게 상의를 하는 편입니다.
아이들 셋 다 부모랑 소통을 많이 하곤 합니다.
저는 그게 고맙기도 하고요.
원래 중학생은 안 그런가요? (최대한 부드럽게 질문을 했으나 속에선 살짝 기분이 좋지는 않았음)
선생님: 네. 그런 걸 보통 친구랑 이야기를 하거나 그러죠. 아이가 되게 예민하네요?
(예민이라는 단어가 거슬렸으나 선생님이 사랑이 많고 다정한 분은 아니시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뭐 상황에 따라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지. 워~ 워~)
나: (다른 단어로 정정을 하고 싶었다.) 아. 아이가 조금 여린 면이 있어요.
그동안 선생님들께 지적받은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친구들 앞에서 혼이 여러 번 나니까 마음이 어려웠나 봐요.
선생님: 다 관심이 있기에 지적도 하는 건데..
그걸 그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네요.
나: 아이도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알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이유 없이 지적하신 것도 아니라고 했어요.
저도 친구랑 대화한 것 잘못했다고 말을 했고 색종이 접기는 혼을 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지만
다음에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다만 연필 잡는 거는 쉽게 고쳐지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쩌죠?
선생님: 어머님. 글씨 자세를 바로 잡아야 나중에도 좋은 겁니다.
나: 그렇죠. 아이에게 노력해보라고 이야기할게요.
단번에 바뀌는 건 아니니 기다려주세요. 선생님이 너를 미워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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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이가 많이 예민한 것 같아요. 혹시 아이가 전혀 지적을 받지 않기를 바라신다면.. 무관심하게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아이가 조금 여린 면(예민--> 여림 으로 다시 정정)이 있지만 아이를 위한 지적이라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그런 부분은 아니고요.
다만 선생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친구들 앞에서 지적을 여러 번 받으면.. 그걸 많이 민망해하고 자존심 상해하더라고요.
선생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지셨다.)
나: 저도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을 잘 듣도록 이야기를 할게요. 선생님께서도 1학기까지는 아이를 예쁘고 귀여워해 주셨다고 하셨으니 아이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조금만 이해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춘기 아이들 가르치시면서 많이 힘드시지요? 이렇게 전화를 받으시니 놀라시기도 하셨을 거예요. 엄마다 보니 아이의 힘듦을 모른척 할 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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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 선생님. 우리 아이 다시 이뻐해주시고 귀여워해주시면 좋겠어요. ^^ (약간 애교를 넣어서 부탁)
얘가 보면 밉상은 아니잖아요 ㅎㅎㅎ 이뻐해주세요? ^^
선생님: (웃으시며 하하하) 네. 맞아요.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에요.
나: (마무리하면서)선생님께서도 한 아이의 어머니 시기도 하시니 저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노력해주신다고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
선생님과의 통화가 잘 마무리되었고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이해하시고 노력하시겠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훈훈한 마무리로 감동을 받으며 전화를 끊게 되었다. 역시 서로 생각하는 게 달라도 대화로 많은 부분이 해결이 가능하구나!)
그 후...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도 쏙 들어갔다.
나도 안다.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드실지... 연세도 많으신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변화를 시도하신다는 것도 쉽지 않음을..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 누구나 어렵지 않은가?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많이 노력해주시고 아이들에 대해 조금은 더 넓은 마음으로 변화하셨다.
<선생님의 변화에 사실 감동을 받았다. 인정하고 변화를 시도하신 부분에 대해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아... 그리고 3번째로 선생님의 표현 '예민'을... 내가 '아이가 조금 여려요.' 로 받았을 때... 4번째에는 선생님께서 '아이가 여리네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아이가 기분 좋게 하교를 했다.
아이: 엄마. **선생님이 달라진 것 같아. 부드러워지셨어.
나: 그래. 선생님이 그 연세에 그렇게 노력하시는 거 진짜 힘든 일이야. 너희들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못하셨을 거니까 너도 이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도록 노력해봐. 말씀하시는 부분이 너에게 필요한 부분이잖아.
네가 엄마한테 왜 전화했냐고? 진짜 할 줄 몰랐다고 뭐라고 했잖아. 어때? 잘했지?
아들: 응. 도대체 어떻게 말한 거야?
나: 그냥. 솔직하게 묻고 부탁을 드렸지. 엄마가 원래 누구랑 싸우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잖아.
선생님도 너를 많이 이해하시려고 하시는 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너는 힘들었는데 엄마가 그냥 무심코 넘긴 거 미안했어.
엄마한테 힘든 거 이야기해준 거 고마웠어.
가장 어려운 순간엔 꼭 부모님한테 말해야 한다. 알겠지?
아들: 응. 그럴게. 근데 전화는 쫌...
나: 응. 엄마도 전화 처음 걸었어. ㅎㅎㅎ 이 녀석아. 엄마가 자식이 뭐라고 전화까지 걸었다 야~~~ 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