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히버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I Sep 05. 2024

조롱

MOCKERY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나는 휴가를 내고 폴리머스 항구를 찾았다.


나는 이 곳에 이전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었다.


오늘 나의 방문은 그 때 만났던 한 여인의 이후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긴 항해 끝에 내가 선원으로 있었던 배는 플리머스 항에 정박했다.


배에서는 인도에서 가져온 향신료, 설탕, 커피, 면직물, 실크, 귀금속, 엽서와 도자기, 상아 조각품 등을 내렸고


플리머스의 상인들은 빵, 고기, 채소 등 신선한 식량과 신선한 물, 밧줄, 돛, 나침반 등 항해용 장비와 탄약과 무기, 그리고 맥주를 꺼내놓았다. 


항구의 공기는 짠 내음이 가득했고, 곳곳에서 노새의 울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랬다. 그리고 태양은 머리 위에서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항구의 바닷물은 반사하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배가 교역하는 동안 잠시 여유가 생긴 나는 한 선술집에 들어갔다.


선술집은 오래된 돌벽과 기와 지붕을 가진 건물로, 문 위에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나는 항구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텐더는 바 뒤의 큰 나무 통에서 맥주를 따라주고, 주방에서는 고소한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다.


무심코 본 항구에는 한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날씨가 꽤 더운데, 왜 저기 계시는거요?”


“예전에 아들이 항해를 떠난다고 했어. 그는 꼭 돌아오기로 했지.“


”그래서 그 날부터 그가 돌아올 때까지 저 항구에 있는거라네.“


“아들은 어디 있고요?”


“배가 큰 폭풍우에 휩쓸렸다는군.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걸 보면 죽었다고 봐야지.”


“그럼 오지도 않는 아들을 기다리느라 저 땡볕에 밖에 있는다고요?”


선술집의 다른 사람이 얘기했다.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나, 아들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날 바로 잘못돼버렸을걸.”


“남편도 저 성격을 못이겨서 아침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리러 오지.”


“그래도 나이가 많아보이는걸요. 저 나이에. 어떻게든 설득해서 집 안으로 데리고 가야죠. 죽은 아들의 손수건이라도 위조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기 가 앉아있어, 하루에 장장 8시간을 말이야. 아주 독한 할머니지.


그리고 이제는 뭘 해봤자 소용 없어, 더이상 우리 얘기를 듣지도 않을거야.


옆에까지 다가가도 본 채도 하지 않지.


살 날이 다 되가는데 어째 점점 고집불통이 되는 모양이야.“


나는 벌떡 일어나 선술집을 나왔다.


나는 벤치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여기 있다간 일사병 걸릴 거에요. 사람들이 하는 말 들어봐요. 아들이 탄 배는 폭풍우에 휩쓸렸어요. 거짓된 희망은 버리는 편이 좋다고요.“


그녀는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몸을 획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혼탁했다. 그리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듯 했다.


그녀는 나의 얼굴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한 번 코를 킁킁 댔다.


나는 다시 선술집으로 돌아왔다.


“귀가 먹고 눈이 멀었구만.”


내가 말했다.


선술집 안의 사람들이 웃어댔다.


“또 한 사람이 다녀왔구만.”


“말했잖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고 말이야.”


“코를 킁킁 대는 것을 보았나?


바닷사람이니 모두가 소금냄새가 나는걸 어쩌나.”


“내가 그 아들을 잘 아는데 말야,


떠날 때 아들이 어머니를 한 번 꼭 안아주고는 말하더군.”


“꼭 다시 돌아올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들의 조롱에 기가 찼다.


“설령 아들이 돌아왔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 귀가 먹고, 눈이 멀었는데 말야.”


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그들에게 편하게 주어진 핑계 속에서 살면서,


일말의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저 조롱하는 것을 선택한 자들의 행태에 토악질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과 확연히 다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저 조롱하는 자들에게 분개하는 것만이 전부인 나의 처지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무력감을 느꼈고, 기분이 상했다.


배의 종 소리가 들렸다. 선원들에게 돌아오라는 신호였다. 배의 출발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나는 선술집에서 나와 터덜터덜 배를 향해 걸어가다가,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할머니를 안아주었다.


할머니의 가냘픈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그녀가 나지막히 내뱉었다.


”돌아왔구나, 아들아.“


배에서는 호각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바로 몸을 빼내어 배로 돌아왔었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항구에 나오지 않았죠.


걱정한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가보았지만,


할머니는 잘 있었어요.


그녀는 웃고 있었지요.


그 후로 한두 해 정도 살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요.”


선술집에서 만난 한 남자가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녀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에 느꼈을지도 몰라. 그 이후부터는 그 공허한 자리가 채워지기를 오랜 시간 바래왔는지도.’



작가의 말


한 사람의 슬픈 기다림을 넘어, 우리의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고독과 희망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모든 이들에게는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고, 그 상실은 때로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남습니다. 


누군가는 그 기다림을 조롱할지 몰라도,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강한 마음과 끝없는 희망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 아들을 기다리던 긴 여정이 끝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그 기다림 속에서 안식을 찾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진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