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D HARMONIZER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수록작
깨끗하고 편안한, 매너 있는 지하철.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서횡단선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사람들 틈에서 숨이 막힐 듯했고, 신경질적인 얼굴들이 뒤엉켰다. 몸을 부딪히며 출근하던 그 지하철은 사람들의 짜증과 피로가 섞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기질 개선 장치가 작동된 이후로 동서횡단선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가 된 듯했다. 사람들은 모두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지하철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질서정연했다. 심지어 붐비는 시간대에도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며 마치 프로그램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기질 개선 장치 작동 법안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나면서, 동서횡단선은 더 이상 과거의 그 혼잡한 지하철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미소 띤 얼굴로 타고 내렸고, 불쾌한 냄새나 소란스러운 소리도 사라졌다. 지하철은 이제 그야말로 깨끗하고 완벽한 모습이었다. 더 이상 다투는 승객도, 지친 얼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날도 출근길에 나선 나는 평소처럼 동서횡단선에 올라탔다. 밝고 깔끔한 열차, 평온한 사람들. 모든 것이 문제없이 흘러가는 듯 보였다. 나는 가방을 열었다. 그 순간, 손끝에 닿은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꺼내보니 몇 년 전 묵혀두었던 마스크였다. 한때는 필수품이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공기는 맑고, 지하철은 쾌적했다. 마스크는 이제 필요 없는 물건처럼 보였다.
나는 문득 그 마스크를 다시 써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오래된 물건을 얼굴에 대자,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그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마스크 너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던 동서횡단선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완전히 망가진 지하철이었다. 창문은 금이 가고, 좌석은 낡고 찢어졌으며, 바닥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승객들의 얼굴은 고통과 피로로 일그러져 있었고, 초점 없는 눈빛을 한 채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는 기괴했다.
나는 놀라서 마스크를 벗었다. 지하철의 냄새도 달라져 있었다. 그저 깨끗하고 상쾌했던 공기는 끈적하고, 썩은 듯한 역한 냄새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기질 개선 장치의 가스가 코를 통해 뇌로 들어오며, 곧 동서횡단선 안은 내가 알던 밝고 화사한 곳으로 바뀌어갔다.
다음 날, 나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동서횡단선에 있었다. 천장에서는 물이 새고, 형광등은 깜빡거렸다. 나는 마스크를 쓴 채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 평온한 가면 뒤에 감춰진 것이 이렇게나 처참한 것일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보았던 평화로운 세상은 가짜였다. 화학물의 힘으로 만들어진 평화, 감정만을 조절해 억지로 덮어둔 평화였다. 현실은 그대로였고, 오히려 더 처참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볼 때는 여전히 멀쩡해 보였던 회사는, 마스크 너머로 본 모습은 완전히 붕괴된 폐허나 다름없었다. 가구들은 부서져 있었고, 컴퓨터는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직원들은 책상에 기대어 힘없이 앉아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도 무력감이 가득했다.
그때, 창문 너머로 빛나는 건물이 보였다. 그것은 시청이었다. 유일하게 깨끗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그 건물은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섬 같았다. 왜 시청만이 이렇게 완벽하게 남아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질 개선 장치가 도입된 이후, 사람들은 이 장치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장치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가릴 뿐,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도 해결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을 조작해 현실을 가리게 했을 뿐이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진정한 해결책은 기계나 장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행동과 올바른 정책에 있다는 것을.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우리는 그저 달콤한 거짓 속에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말
우리는 때로 눈에 보이는 평온에 속아 진짜 문제를 놓치곤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감정의 조작이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고 바꿀 때 얻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