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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Sep 20. 2024

언더그라운드, 0F, 서울

UNDERGROUND OF SEOUL-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축하합니다.


9호선을 99번 횡단하신 분께 드리는 특별 선물입니다."


"그런 것도 있었나요?"


어느 퇴근 길, 김포공항에서 내렸을 때,

한 철도공무원이 나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선물을 받았다.


"이게 뭔가요?"


김포공항에서 사람들에 휩쓸리면서 내가 물었다.


더 물어보고 싶은게 있었지만,


철도공무원 또한 사람들에게 휩쓸려, 그의 파란 모자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머리 위로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3분 정도 지나고, 

공항철도와 5호선, 골드라인, 서해선으로 환승할 사람들과 비행기를 탈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비로소 내가 받은 선물을 자세히 뜯어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9호선 개화역 환승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선물을 뜯어보았다.


열쇠였다.


그런데 반쪽 자리 열쇠였다.


'무엇을 여는 열쇠지?'


개화역으로 가는 텅 빈 열차 안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번뜩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반쪽은 6호선을 66번 횡단해야 주어지겠구나.'


나는 다음날부터 중앙보훈병원 앞에 있는 회사에 휴가를 냈다.


그리고 6호선을 탔다.


신내부터 응암까지,


응암에서 신내까지가 한 번이었다.


며칠에 걸려 이 걸 66번 반복했더니 ,


응암역에서 한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축하합니다.


6호선을 66번 횡단하신 분께 드리는 특별 선물입니다."


나는 열쇠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9호선에서 받은 열쇠와 6호선에서 받은 열쇠를 합쳐보았다.


두 열쇠는 서로 엇갈리며 꼭 맞았다.


'맞았다!'


"그런데 이 열쇠로 어디를 열어야하는거죠?"


하지만 그녀는 어디론가 없어져있었다. 그녀가 머문 자리에는 붕어빵 봉투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럼 이제 이 열쇠로 무얼 열어봐야하려나.


아마도 6호선과 9호선의 환승역이 힌트가 되지 않으려나?'


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았다.


6호선과 9호선은 만나는 역이 없었다.


나는 6, 9호선의 숨겨진 역들을 조사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공책에 6과 9를 끊임없이 써내려가다가 문득 6과 9를 합쳐 8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답은 8호선이었어!'


나는 회사에서 공책을 내버려둔채 가장 가까운 8호선 역으로 뛰어갔다.


나는 8호선의 팜플렛을 집어들고,

8호선의 역들 이름을 보았다.


'24개의 역. 이 중 열쇠로 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머리에 쥐가 난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8호선을 88번 탄다면 답이 나올지 몰라.'


나는 택시를 타고 별내역으로 갔다.


별내역에서 모란역까지,


모란역에서 별내역까지.


지하철을 타면서 나는 수상한 여자를 보았다.


분명 모란역까지 가는 열차 안에 그녀가 있었는데,


별내역으로 가는 열차에도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44번 정도 그녀를 마주쳤을 때쯤, 그녀가 사람들을 뚫고 나에게 다가갔다.


"혹시 열쇠를 가지고 계신가요?"


그녀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녀는 까치산에 살았다.


그녀의 직장은 신설동에 있었다.


그녀는 굳이 2호선을 타고 회사를 다녔다고 했다.


어쩔 때는 강북 노선으로,


어쩔 때는 강남 노선으로.


"아니, 중간에 5호선을 탄다면 더 빨리 도착할텐데요."


"저는 회사 가는 길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이라면 꼭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나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을 찾아가면 그게 여행이지요.


어느날, 퇴근길의 까치산역에서


한 철도공무원이 무언가를 내밀었어요.


2호선의 모든 역을 22번 지나간 분께 드리는 특별 선물이라면서요.


그 안에는 반고리 모양의 쇠봉이 있었지요.


저는 며칠간 그 용도가 무엇인지 고민했지요.


공책에 2를 222번 정도는 썼을거에요."


그녀가 방긋 웃었다.


그 순수한 웃음에 나는 잠깐 설렜다.


"그러던 중 깨달았어요. 2를 뒤집으면 5가 된다는 걸요.


믿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이번에는 5호선의 모든 역을 55번 지나가보자고 결심했죠."


"5호선은 행선지가 두 곳이잖아요"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네, 정확히 55번을 반복했어요.


먼저 시도한 것은 방화역에서 상일동역까지 였어요.


그렇게 55번을 반복하자, 상일동역에서 한 남자가 작은 철제 박스 반쪽을 제게 주었죠.


벙화역에서 마천역까지 55번을 반복하였을 때는 남은 철제 박스 반쪽을 갖게 되었구요.


그걸 모두 조립하니,


이처럼 자물쇠가 되었지요."


그녀가 나에게 자물쇠를 흔들어보였다.


"저는 다시 고민을 했어요.


조립하자마자 자물쇠는 잠겨버렸는데 어떻게 하면 자물쇠를 풀 수 있을까 하고요.


이번에는 공책에 2와 5를 77번 정도는 그려보았을 거에요. 


그러다 다시 알게 되었죠.


2와 5를 겹쳐 쓰면 8이 된다는 것을요."


그녀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래서 8호선을 88번 타려고 했는데, 그쪽을 본거에요."


"그랬군요.. 말씀대로 저는 열쇠를 받았습니다. 9호선에서 반 쪽, 6호선에서 반 쪽이었지요."


나는 열쇠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사실 저는 이 열쇠가 서울의 숨겨진 지하로 들어가는 모험의 열쇠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쪽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기념품이었나 보군요."


그녀는 씁쓸함이 담긴 나의 말을 듣고, 내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내가 내민 열쇠를 받아, 자물쇠에 맞추어 보였다.


'딸깍'


자물쇠가 열렸다.


"이렇게 된 거, 저희 남산에 자물쇠 달러 갈까요?"


내가 말했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고, 잠깐 멍해하더니, 뒤로 펄쩍 뛰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게졌다.


그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아, 남산N타워 말씀이시죠?"


"네, 기념품이라면 제대로 기념을 하는게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이제는 자물쇠를 열 수 있게 되셨으니까요,


저도 제 열쇠로 열 수 있는 자물쇠를 발견했구요."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럼 곧 천호역이니까 5호선으로 갈아탔다가, DDP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갈까요?"


"좋아요. 케이블카 타요. 남산케이블카 타본 적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아뇨, 서울 사람인데도 남산을 가본 기억이 없네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 남산돈까스 먹은 기억은 있는데, 자물쇠는 한 번도 안 걸어 봤어요."


그렇게 우리는 명동역으로 갔다. 회현사거리까지 걸어가면서 그녀는 서울의 여행지 이야기를 했다.


평일이라 케이블카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다리를 쭉 뻗었다.


그녀는 창 밖의 서울 풍경을 바라보면서 아이처럼 신나했다.


남산서울타워에 도착해서는 자물쇠를 걸었다. 그녀는 열쇠 수거함 앞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에 열쇠를 두면 되죠?"


"네, 맞아요."


남산서울타워에서 나온 우리는 해방촌의 한 루프탑에서 저녁을 먹었다.


서울의 야경 아래 웃고 있는 그녀는 참 예뻤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연애 끝에 결혼했다.


지하철의 끝과 끝을 다니던 그녀와 요즘은 골드라인을 탄다.


그녀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옆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작가의 말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시작된 작은 모험이, 결국 우리 삶의 여정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반복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우리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만남과 사랑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 운명처럼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노선 끝에서 만난 그들이 결국 함께 남산의 자물쇠를 걸고, 인생이라는 여행을 함께하게 된 것처럼요.


이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설렘을 남겼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사랑과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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