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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Sep 22. 2024

실ㅎ증

APFASIA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나는 의사에게서 병을 진단받았다.


실ㅎ증에 걸렸다는 것.


이로 인해 나는 ㅎ 발음을 하지 못하게 됐다.


“실ㅎ증이란, 말 그대로 ‘ㅎ’ 발음을 잃게 되는 병입니다. 신경계와 관련이 있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머릿속에서 ‘ㅎ’ 소리를 몇 번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할 때마다, 이상하게 그 소리는 사라지고 다른 발음들만 남았다.


'하…' 입을 벌려 힘주어 소리를 내보려 했으나,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하’조차.


“왜…” 그는 물음을 던지려 했으나 끝까지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왜 하필 나지?’ 묻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답답함만 남았다.


“생각보다 흔한 질병입니다.”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나는 생각했다.



“치료 방법으로는,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여행을 가면 좋습니다.


해외 여행같은거 말이죠.”


“저는 그…”


‘해외’라는 발음이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외국을 다 다녀왔습니다.”


의사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면 웃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단, 허파가 들썩이고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의 진짜 웃음이어야 하죠.”


의사는 시범으로 크게 웃어보인다.


“웃는 소리는 ㅎ과 관련이 있으니까요.”


나는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의사는 머쓱한지, 나에게 다른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환자분께서는 잘 웃지 않는 스타일이신 것 같군요.


애당초에 이 병 조차도 그런 분들이 많이 걸리시죠.


약물 치료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약물 치료를 받으면, 당분간 환각이 보일 수 있습니다.


다 환자분을 웃게 만들기 위한 것들이죠.”


그는 나에게 빨간 약과 물 컵을 내민다.


“내일 다시 방문하세요.”


나는 빨간 약을 먹고 물을 들이마셨다.


병원을 나오자 똑같은 거리가 펼쳐졌다.


‘똑같은 하루하루인데 도대체 어떻게 웃으라는거야.’



그 때 나는 옆에서 지나가는 한 행인의 손에 들린 음료를 보았다.


커피 안에 라면이 들어있었다.


“저기요, 지금 그게 뭐죠.”


그는 빨대인줄 알았던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갈라 면발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이거요? 커라면이에요. 커피맛이 나는 라면이죠.


우유커피맛 라면도 있어요.”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큰 거리로 나오자 사람들이 팬티를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유명 브랜드의 팬티들이 패션 아이템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에 올려져있었다.


“이런거로 날 웃게 만들겠다고?”


그 길로 나는 직장에 갔다.


나는 인형탈 알바를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탈의실로 가려는데


상사가 나를 붙잡았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은 의사의 얼굴과 같았다.


‘이걸 깜박했네’


그가 나에게 알약을 내밀었다.


알약은 갈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게 뭔데요?”


“자네 업무잖아. 사람들 앞에서 웃음을 주는 일.”


나는 알약을 받아들었다.


‘일이라면 받아들여야지.’


나는 알약을 삼켰다.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몸에서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털은 빠른 속도로 자라,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연기하는 인형탈 괴물이 되어 있었다.


옆에서 커튼이 걷히며, 나의 동료들이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평소부터 인형탈 갈아입기가 번거롭다고 했으면서, 이젠 갈아입을 일이 없어서 좋겠어.”


나는 울상을 지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그 의사와 관련된 일임을 직감했다.


나는 탈의실 밖으로 나가, 상사를 붙잡고 말했다.


“잘못했어요, 제발. 다 없던 일로 해주세요.”


그 때 나는 의사의 집무실에서 눈을 떴다.


“치료가 다 되었네요, 이제 ㅎ 발음이 잘 나오시죠?”


“후…”


나는 한숨을 내쉬어보았다. 정말 ㅎ 발음이 나고 있었다.


“실ㅎ증을 치료하는데, 웃음이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지금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도록이요.”


그는 ‘행’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을 나왔다.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고 있었다.


‘커라면을 먹는 세상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일에 가기전 카페에 들려서 커피를 주문했다.


“헤이즐넛 라떼, 핫으로요.”



작가의 말


가끔은 무심한 웃음과 여유로 소소한 문제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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