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INO PURGATOR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비행기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비행기는 공중에서 폭파되었고,
조종사, 승객, 승무원, 테러리스트를 포함한 108명은 전원 사망했다.
“여긴 어디지?”
혼란스러운 사건의 직후,
감각을 차단했던 거대한 폭발음과 검은 재가 가시고 난 후,
그들이 있는 곳은
한 도박장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들 몇몇이 비행기 좌석을 풀고 일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간은 형형색색으로 가득 차있었다.
“저건 뭘까요?”
조종사가 멀리 놓인 무지개 빛깔의 원판을 가리켰다.
승무원이 눈을 흐리며 조종사의 손이 가리키는 정체모를 그것을 보았다.
“글쎄요.”
그 때,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러분, 카지노 ‘연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거기에 서 있는 여성은 어깨를 단정하게 감싸는 짙은 네이비색 자켓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유니폼과 같은 색의 가죽 벨트가 채워져있고, 깔끔하게 다려진 하얀 셔츠에 블랙 하이힐 차림이었다. 그녀의 목에는 카지노 로고가 새겨진 스카프가 우아하게 묶여 있었다.
“카지노 ‘연옥’이라고요?”
한 승객이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즉사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오실 경우를 대비해서,
저희는 큰 공간을 대관해두죠.”
그녀는 여유롭게 씽긋 웃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 내생을 가리키는 과녁입니다.“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으실 것 같아,
같은 모형을 준비했습니다.“
그녀가 벽처럼 생긴 서랍에서 다트판과 같이 생긴 커다란 원판을 꺼냈다.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그걸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번쩍 들어 양옆으로 돌려주었다.
“병원, 집, 호스피스, 도로, 전쟁터, 산, 바다, 양로원, 버스, 지하철, 비행기.. 이 것들이 다 뭐죠?”
부조종사가 말했다.
“내세에 여러분이 죽게 될 장소 혹은 상황입니다.“
”미리 이런 걸 정해둬야 한다고요?“
”사실 여러분의 내세는 99프로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얼마전까지는 죽음의 순간도 자동으로 배정되는 시스템이었지요. 다만, 최근 연옥 헌법 개정으로 인해 죽음의 순간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테러범도 끼어 있었다.
“자, 여러분 여권 안쪽을 보면 연옥 티켓이 있을 겁니다. 티켓에 발권번호가 있지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자신의 안주머니 등을 뒤져 티켓을 찾아냈다.
비행기 티켓 대신 들어있던 연옥 티켓에는 1번부터 108번까지의 번호가 적혀있었다.
그녀는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셔서, 대기실을 지나, 라운지에서 대기하셨다가,
번호순으로 다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공항의 탑승구와 같이 생긴 문이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출국심사장과 같은 대기실을 지나니, 라운지가 나왔다.
사람들은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줄기 시작하고,
혼자 남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테러범이었다.
“마지막 손님 차례입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대기실로 들어섰다.
대기실에는 이전에 보지 못한 책상 위에 머리끈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게 무엇인가요?”
”챙기셔야 하는 도구입니다.“
남자 직원이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도 가져간건가요?“
”다른 분들의 경우 선택권이 더 많았습니다. 총, 활, 다트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머리끈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는 머리끈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호스티스가 있었고,
방 안은 이전과 다르게 벽에 찢긴 자국들이 생겨 있었고, 화약 냄새도 났다.
”마지막 손님이시군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내세를 선택할 시간입니다.
이 선 뒤에서 날리셔야 해요.”
그녀는 그의 발 밑 선을 가리켰다.
그는 방 저편에 놓인 과녁을 가리켰다.
그 거리는 비행기 꼬리와 머리까지의 길이는 되어보였다.
”머리끈만으로 이만큼의 거리를 날아가게 하는건 불가능해요.“
남자가 말했다.
호스티스는 여전히 웃으며 덧붙였다.
“방에 놓인 다른 도구도 사용하실 수 있으세요.“
남자는 방에 놓인 물건들을 돌아보았다.
벽에서 떨어져나온 석고 조각, 부서진 나무 책상 다리가 보였다.
”그럼 새총을 만들겠습니다.“
그는 머리끈을 고무줄로 활용해 새총을 만들기 시작했다.
“네.”
그녀가 대답했다.
새총은 어린 시절, 그가 많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다.
어느덧, 그는 새총을 다 만들었다.
그는 석고 조각을 바닥에 문질러 모난 부분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날카로운 부분이 머리끈이 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그는 맨들맨들한 석고 조각을 머리띠 사이에 끼우고, 있는힘껏 잡아 당겼다.
그가 손을 놓자, 석고 조각이 힘차게 공중으로 날아올랐지만, 과녁 근처도 가지 못하고 파란 바닥에 떨어졌다.
”최선은 다했습니다만, 이러면 어떻게 되는거죠?“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설명이 다소 구체적인 건 바닥에 쓰여있지요.
이 공간 전체가 과녁인 셈입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석고 조각이 놓인 곳으로 걸어갔다.
“어디 보자, ‘비 갠 후 개미’라고 쓰여있네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파란 바닥에 쓰여진 설명을 읽었다.
그는 조금 당황했다.
”이게 무슨 뜻이죠?“
여자가 설명했다.
”당신은 내세에 지렁이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도로로 나왔다가,
땅이 마른 다음 날,
개미들에게 먹혀 죽는다는 것이지요.”
작가의 말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가고, 마지막 선택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곤 합니다.
하지만 내세의 운명조차도 결국 우리가 걸어온 길 위에 놓인 하나의 결과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