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시절, 작품 연출이 안 풀려 끙끙대고 있는데 학부생 무대감독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겁니다.
"A penny for your thoughts?"
한창 예민했던 나는 '네 생각이 1원짜리 가치가 있냐?'라는 뜻으로 오해하고 그 친구의 뒤통수를 갈길 뻔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이 표현은 토마스 모어 경이 1522년 처음 쓴 이래 50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부드럽고 상냥한 표현입니다. 대화를 멈추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무슨 생각하고 있어?"
Penny는 동전 한 닢이지만 당시 화폐 가치를 감안하면 약 5천 원에 해당합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푼돈도 아니죠. 그저 적당한 존중을 담아 상대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표현입니다.
곁길로 빠져보자면,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당시와는 달리 우리 시대는 전 세계의 볼거리, 읽을거리로 넘쳐납니다. 남의 생각이 궁금할 새도 없이, 온라인 바다는 '내 생각이 궁금하지 않아?' 라며 온갖 정보의 파도로 거세게 문을 두들겨 댑니다. 1원은커녕 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그 생각을 값없이 들여다볼 수 있고, 상당수는 동전 한 닢의 무게도 없이 순식간에 소비되고 휘발되어 버립니다.
이런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어느 겨울,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6시간 이상씩 에어브러시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엔 손가락이 굳어서 움직이질 않았는데도 맘에 들지 않아 밤늦게까지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나중에 결과물을 온라인에 올려놓고 내가 지친 나에게 묻습니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왜 그렇게까지 해? 누구의 인정을 바라는 거야? 맘에 안 들어서 한번 더 스트로크를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데?" 잠시 후, 내가 나에게 답을 합니다. "난 나의 인정을 바라는 거야. 내가 알아주고 내가 기뻐하기 위해서야."
뻗어나가다가 막혀버린 글... 멈춰버린 손가락... 깜빡이는 커서는 내게 묻습니다.
A penny for your thoughts?
내가 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백색의 빈 공간은 온갖 사유와 상상의 거친 스트로크로 뛰어놉니다. 고통과 희열이 교차하고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공연은 관객 없이 완성될 수 없고, 글은 독자를 만나 공명할 때 비로소 그 존재 의미를 찾게 되지만, 독자를 찾아 갈망하는 내게 또 하나의 나는 어깨에 걸터앉아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짓궂게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