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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Jun 23. 2024

Anaspora...다시 만날 그날을 꿈꾸며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01

Anaspora: 돌아감, 귀향, 하나 됨, 연결.

Diaspora: 씨앗을 뿌리다. 흩어짐, 단절.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던 가슴 시린 꿈이 하나 있다....


아담한 극장. 환한 조명을 받으며 아름다운 공연이 열린다. 무대와 객석에는 과거와 현재를 함께한 나의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있다. 해처럼 환히 웃으며 그들은 무대 위에서 나와 대사를 나누고, 객석에서 박수로 함께 축하한다. 그들 중에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옛 친구들, 천국에 간 나의 가족들, 생사를 알 길 없는 그리운 얼굴들이 보인다. 한 사람, 한 사람, 말을 걸고 옷깃이라도 만져보고 싶은데, 그들은 어느덧 바람처럼 나를 비껴가고 하나둘씩 사라진다. <태풍 Tempest>에서 캘리반이 부르짖은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꿈을 꾸고 싶어 울었다"라는 고백은 절절한 나의 외침이기도 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바스토뉴 전투에서 절반 이상의 사상자를 낸 이지(Easy) 중대는 어느 교회에서 성가대가 불러주는 '사랑의 기쁨'을 들으며 밤을 보낸다. 전사자 목록을 작성하는 립튼 상사의 눈에 불현듯 꿈처럼 교회 회중석에 앉은 모든 중대원들이 보인다. 쓰러지기 전의 온전한 육신과 표정으로 그들은 정답게 쉬고 있다. 그러나, 머물고 싶은 그 순간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하나씩, 하나씩, 죽은 자들은 유령처럼 빈 공간을 남기고 사라진다. 남은 것은 드문드문 앉아있는 피로에 지친 산자들 뿐이다.



디아스포라는 더 이상 대규모 민족 단위의 흩어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줄을 잇는 귀성 행렬이 보여주듯, 흩어짐과 헤어짐은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한 지붕 밑에서 정답게 아웅다웅 살던 가족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떠나 흩어지고, 이따금 재회와 이별을 반복하다가 때가 되면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디아스포라 인생의 존재적 결말은 임종의 침상이고 우리는 생명이 꺼져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앙상한 손을 붙들고 탄식하고, 눈 감은 차가운 얼굴을 애닯게 부비며 기약 없는 긴 작별을 고한다.


흙에서 흙으로,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dust to dust....)



이게 다 일까? 이것이 인생의 전부일까?




아나스포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조어다. '떨어진'이라는 접두사 'dia'를 떼어내고, '뒤로, 돌아가는'이라는 접두사 'ana'를 붙여 파종하기 전, 씨앗들이 모두 함께 모여있는 하나 된 상태, 곧 흩어진 모든 사람들이 다시 만나는 우리의 염원을 담고 있다. 우리의 콧등을 시큰하게 하는 '집'으로 돌아가고픈 소망은 때로는 혹독한 현실과 싸워 이길 용기를 주기도 하고, 그 꿈과 환상으로 이산의 추위를 버텨낼 소망을 주기도 한다.


어찌 보면 요즘 대세인 회귀물들의 열풍 역시 디아스포라의 고통과 아나스포라의 회복으로 풀어볼 수 있겠다. 형식이 회귀건 빙의건 환상이건 간에(회빙환), 뼈아픈 실패와 죽음으로 인생 1장을 망친 주인공은 현재의 기억을 품고 죽음과 슬픔이 찾아오기 이전의 시간, 즉 디아스포라 이전의 과거로 돌아간다. 아나스포라의 물리적 시간으로 되감기 한 주인공의 여정은 이후 디아스포라의 분기를 피하고 아나스포라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장르와 코드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이 모든 회귀물의 공식 뒤에는 인생 제2장을 통한 아나스포라적 회복과 귀향의 꿈이 담겨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판타지의 영역에서 조차 죽음은 넘어서기 힘든 궁극의 종말이요 단절이다. 형이상학파 시인인 존 단(John Donne)은 상상력이 아닌 아닌 믿음의 눈으로 담담히 기록했다.


그 영결(永訣)의 디아스포라가 실은 짧은 전주곡에 불과하고, 그 뒤에는 영원한 아나스포라 교향곡이 기다리고 있음을....


짧은 잠이 지나면,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리라,
그리고 죽음은 더 이상 없으리니, 죽음이여 그대는 죽을 것이라.
One short sleepe past, we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John Donne, Sonnet X, "Death Be Not Pr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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