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대학교 캠퍼스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은 간호대학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간호전문학교로 문을 열었을 때 작은 석조 3층 건물로 지어진 강의동이었는데 다른 건물들은 강점기말 미군의 폭격과 한국전쟁의 격전을 거치며 모두 무너지거나 파손되었지만 이 건물만은 멀쩡히 살아남았다. 이 건물의 좁은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두꺼운 철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다시 급한 경사로 지하로 내려가는 녹슨 철계단이 있다. 그 철계단 아래로 내려서면 콘크리트로 마감이 된 갱도 같은 긴 통로들이 시작된다. 이 지하의 미로가 간호대 지하에만 있는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 용도도 방공호인지 각종 배관이 설치되어 있는 관리보수용 터널인지 불분명했다. 이 미로에는 조명이 전혀 없고 벽과 바닥은 축축했으며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피교수가 절벽에 쓰러져있던 그 시각.
석철과 하영은 좌우를 살피며 바랜 페인트로 출입금지가 큼지막하게 써진 두꺼운 철문을 끼이익 열고 지하계단으로 내려선다. 그들은 각자 손전등을 들고 이곳저곳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더듬어 미로 안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다가온 가을 축제 준비위원들로 이 지하공간을 커플들을 위한 귀신의 집으로 꾸미기 위해 몰래 사전 답사 중이다.
“오빠, 여기 진짜 으스스하다. 이게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거야?”
“와우 분위기 죽이네. 이거 반대편 교문 너머까지 이어져 있다고 하던데. 일본군이 여길 지하벙커로 썼다 하더라.”
“와 진짜 오래된 거네 그럼. 야 무서운데 쫌 천천히 가라.
“날 밝기 전에 끝내고 돌아가야지. 걸리면 낭패다.”
“근데 우린 조금만 들어가 보면 되는 거지?”
“그치, 몇 군데 귀신 분장시켜서 배치하고 대장 귀신 마네킨을 반환점에 설치하고, 크크 재밌겠다 그치?”
“대박 날 거 같긴 한데… 쫌 무섭다 여기…”
“쳇 무섭긴. 난 너랑 여기 단둘이 있으니까 로맨틱하고 좋은데? 어둠을 비추는 두 개의 불 빛, 두 개의 펄떡펄떡 뛰는 심장.”
“오빠 변태야?”
“변태라니? 자 봐봐 잉. 커플들이 들어오면 말야. 이렇게 손을 꼭 잡고 둘이 이렇게 붙어 꼭.”
“고만 해라.”
“그리고 불빛에 의지해서 이렇게 한 몸이 돼서 걷는데 말야. 어디선가 이히히히! 내 다리 내놔~.”
“꺅!”
하영이가저도 모르게 석철을 껴안는다. 그는 하영의 볼에 잽싸게 뽀뽀를 한다. 하영은 석철을 밀쳐내며 냅다 걷어찬다. 석철이는 고함을 지르며 손전등을 떨어뜨린다.
석철은 아무 대답이 없다. 하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손전등을 꼭 쥐고 석철이 뒤를 따라간다.
“미친놈. 밖으로 나가기만 해 봐 아주… 이 인간 어디로 간 거야? 또 놀래킬려고 숨어있는 거 아냐? 흠흠... 석철 오빠아~. 장난 그만 쳐라. 아까 건 내 용서해 줄 테니까 고만 하자…”
하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통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자신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더 기분 나빴다. 지금이라도 돌아설까라는 생각을 할 때쯤 첫 번째 양갈래 길에 도달했다.
“오빠! 어딨어? 안 나오면 나 간다?”
....
“여..기…”
“알았어. 기다려.”
하영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걷다가 다시 길이 갈라졌고 “여기”이라는 음성이 오른쪽에서 들렸다. 목소리를 따라 몇 걸음 걷자 다시 길이 갈라졌고 다시 “여기”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며 하영이의 호흡은 가빠지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거미줄처럼 촘촘히 이어지는 미로도 당황스러웠고 오른쪽으로만 돌다 보니 경사가 없음에도 아래쪽으로 끌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고, 바닥에는 지하 습기 때문인지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홀린 듯 열 번 넘게 오른쪽으로 돌았을 때 비교적 긴 통로가 쭉 뻗어있었고 저만치 사람의 모습이 손전등 불빛에 잡혔다. 마치 말뚝박기 술래처럼 등을 구부리고 있는 말편자 모양(∩)의 하체 엉덩이에는 석철이가 자랑하던 죠다쉬 청바지의 무늬가 보였다. 하영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진짜 죽을래? 거기서 뭐 하고…”
순간 가랑이 사이로 머리가 불쑥 나왔다. 거꾸로 보이는 얼굴은 분명 석철인데 두 눈과 입에 텅 빈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안개가 담배 연기처럼 그 구멍들을 통해 모락모락 흘러나오고 있었다. 헉! 기가 질린 하영 앞에 또 하나의 죠다쉬 엉덩이가 안개를 뚫고 솟아올랐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쪽에도 어느새 말편자 모양의 석철이들이 꿈틀대며 통로를 막고 있었다. 그 형체들은 비대한 다리 사이로 얼굴을 내민 채 흐느적거리며 꿀쩍꿀쩍 뒷걸음질로 하영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영은 넋이 나가 몸이 굳었다.
쿠르르~쿠쿵쿵!
이때 지진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고 하영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시멘트 조각과 분진들이 떨어져 내려 안개와 뒤범벅이 되었고 시야를 가렸다. 하영은 기침을 하며 일어나는데 뒤에서 축축하고 뭉툭한 무언가가 다리를 잡았다. “오빠?” 하고 돌아보니 죠다쉬 엉덩이 아래로 그의 시커멓게 구멍 난 얼굴과 뻗어 나온 손이 보인다. 하영은 그 엉덩이를 힘껏 발로 차면서 넘어졌다. 정신없이 반대편으로 기어가기 시작하는데 그 뭉툭한 손이 빨판처럼 그의 다리에 붙어 따라온다. 분명히 발길질에 엉덩이가 넘어가는 것을 봤는데 어떻게 손이 내 다리에 계속 붙어있을 수 있지!?흐엉~ 하영은 울음 반 비명 반 소리를 지르면서 계속 뒤를 발로 차며 필사적으로 기었다.
하영의 눈앞에 퉁퉁한 청바지 다리들의 벽이 막아섰다. 그 사이 반대편에서죠다쉬말편자들이 다가왔다. 맨 앞의 말편자가 엉덩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의 불빛에 그 얼굴이 묻어났다. 거꾸로 매달린 그 얼굴은 하영 자신의 얼굴이었다. 석철의 몸에서 자라난 하영의 머리는 석철과 마찬가지로 눈과 입에 시커먼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 그 구멍 난 입에서 바람 같은 목쉰 소리가 울려 나왔다. “오…빠…” 하영은 넋을 잃고 하아~ 웃으며 정신을 잃었다.
하영의 다리에 붙어있던끊어진 팔이 미끈거리는 검은 촉수들로 변해 다른 편자의 팔과 합쳐지고, 더 두껍고 길어진 뭉툭한 팔은 하영의 머리채를 잡아 뒤에 있는 다른 말편자의 등위로 밀어 올렸다. 하영은 말뚝박기를 하듯 줄 지어 있는 편자들의 등 위로 미끄럼을 타듯이 운반되다가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졌다. 바닥이 있어야 할 곳에는 깊은 우물처럼 끝이 안 보이는 새까만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하영의 머리가 내려가자 “키키키키키키 쿠쿠쿠쿠쿠” 하는 아우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검은 연기 사이로 수많은 손가락 같은 촉수가 뻗어 나와 아래로 늘어진 하영의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 눈과 입으로 몰려들어갔다. 곧 하영의 축 늘어진 몸은 검은 촉수들에 뒤덮인 채 흑암의 심연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같은 시각 야외극장.
유난히 짙은 안개가 몰려오는 바다를 응시하던 혜린의 눈이 살짝 떨렸다.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파도와 안개, 여명에 빛을 차츰 잃어가던 가스등의 오렌지 빛마저 잠시 멎은 듯했다. 그리고….
쿠릉.. 쿠르르릉…!!!
혜린은 몸이 좌우로 흔들리며 자신의 책을 꼭 붙잡았다. 저 깊은 땅밑에서 거대한 북이 울리는 듯한 묵직한 진동이 순식간에 혜린의 몸을 뒤흔들었고, 우지끈 굉음과 함께 야외극장 객석의 이곳저곳이 갈라졌다. 멀리 캠퍼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혜린의 발 앞이 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렸다. 혜린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데, 순간 강한 바다 바람에 머플러가 풀렸다. 어 하며 달아나는 머플러를 반사적으로 잡으려다가 혜린은 책을 놓쳤고, 책은 갈라진 구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혜린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 책을 집었다. 순간 키키키키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던 틈새가 닫히기 시작했다. 혜린은 서둘러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다시 한번 땅이 흔들렸고 몸의 균형을 잃었다. 그 사이 구덩이는 이미 메워졌고 혜린의 허리는 틈새에 끼었다. 혜린은 책을 품에 꼭 안은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몸을 아무리 움직여봐도 빠져나올 수 없음을 깨달은 혜린은 입술을 깨문 채 뭔가를 결심한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고, 모든 끝에는 시작이 있다….”
혜린은 심호흡을 하고 책장을 펼친다.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들려온다. 혜린은 온 힘을 다해 집중하여 책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손가락이 어느 빈 페이지 한가운데서 멎었다. 순간, 등 뒤에서 마른풀 스치는 것 같은 소리가 일어나더니 그 소리는 수만 마리의 메뚜기떼가 잎을 갉아먹는 듯한 소음으로 변했다. 키키키키쿠쿠쿠쿠쿠~~~ 갈라진 객석의 틈새에서 올라온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가 혜린을 에워쌌다. 혜린은 책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찾아…꼭…!”
소용돌이가 땅에 반쯤 묻힌 혜린을 삼키는 순간, 그는 책을 공중에 힘껏 던졌고 책장들은 하얀 새 떼처럼 산산이 흩어져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용돌이로부터 검은 촉수들이 키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화살처럼 공중으로 뻗어나갔으나 책장들은 이미 하얀 점들이 되어 멀어졌다. 소용돌이는 화가 난 듯 돌계단을 후려치며 꿈틀대다가 혜린을 삼킨 채 땅밑으로 사라졌다. 소용돌이에 말려 공중으로 올라갔던 머플러가 아무도 없는 빈자리에 힘없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