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국비유학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뒤 케임브리지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다. 한국의 소나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옷이 검게 젖을 정도로 내리치는 비를 피해 유모차와 캐리어를 끌고 역사로 달렸다. 볼트 택시를 불러 우리 가족이 1년간 지낼 칼리지 기숙사로 향했다.
택시는 케임브리지 중심부(city center)의 외곽 길을 따라 달렸다. 역 근처에는 현대적인 건물도 많았지만, 외곽으로 갈수록 영국 특유의 벽돌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대지 대비 건물 밀도는 높지만 대부분 1~2층 저층이었고, 우리는 케임브리지가 작은 도시라는 말을 실감했다.
비 오는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택시는 city center 북부 Arbury 지역의 기숙사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는 기숙사 건물 안에서 비를 피했고, 나는 미리 챙긴 우비를 입고 루시 캐번디시(Lucy Cavendish) 칼리지로 걸어갔다.
칼리지에 도착해 신입생 등록을 하였다. 나처럼 케임브리지에 갓 도착한 학생들이 몇 보였다. 여권과 입국 항공권을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증을 받았다. 기념품으로는 칼리지 로고가 새겨진 볼펜과 에코백을 받았다. 이후 Porter's Lodge(안내·경비실)로 가서 기숙사 열쇠를 수령했다.
우리 가족의 기숙사는 일반적인 원베드룸보다 넓은 투베드룸 플랫이었다. 렌트비는 다소 높았지만, 아이와의 분리 수면 또는 내 학업 환경을 고려해 선택했다. 1층이 가득 차 당초 2층 플랫을 배정받았기에,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다.
도면과 구글맵으로 이미 여러 번 봤지만, 실제로는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넓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에 공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따뜻한 봄이나 여름이면 이웃과 차 한잔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짐을 풀고 잠시 쉰 뒤 근처 Aldi 마트에서 생필품과 음식을 구입했다. 저녁을 먹고는 두 침실의 침대를 한 방으로 옮겨 붙여, 한국에서 가져온 얇은 사계절 이불 속에서 케임브리지의 첫 밤을 보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지만 오전 10시부터 칼리지에서 Postgraduate Welcome & Induction 행사가 열렸다. 쉽게 말하면 석박사 신입생 OT다.
오전에는 Information Marketplace가 진행되었다. 칼리지 카페에 의료, 복지, 학업지원 등 각 칼리지 직원이 테이블을 마련해 업무를 소개하고 질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신입생들끼리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칼리지 외부의 Centre for Mathematical Sciences 건물로 도보 이동했다. 센터 내 강당에서 학생 행동규범에 대한 단체 서약을 하고, 화재 대비와 성범죄 방지 교육을 받은 뒤 칼리지 president(학장)와 스태프의 환영 인사로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저녁에는 칼리지 카페에서 소규모 디너 파티가 열렸다. 간단한 다과와 주류를 제공하며 신입생들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Tutor(학생생활지도교수)들도 함께했고, 나 역시 담당 튜터 Dr. Jane Goodall과 인사를 나눴다.
남아공, 홍콩 출장 때도 느꼈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이런 Social Gathering 문화가 일반적이다. 가벼운 다과를 즐기며 불특정다수와 담소를 나누는 스탠딩 리셉션이 흔하다. 한국의 회의식 미팅과 달리 구심점이 없고, 누구나 자유롭게 말을 건넨다.
여러 사람과의 대화와 지식 교류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큰 홀을 가득 채운 여러 사람의 목소리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여전히 어렵다. 케임브리지 생활 한달이 지난 지금도, 귀가 완전히 트이지 않은 나는 이런 행사에서 종종 애를 먹는다.
일요일에는 시티센터 북동쪽 Cambridge Retail Park로 가서 Tesco Superstore, Lidl, Dunelm 등에서 생필품을 구입했다. 베개, 이불, 수건, 그릇, 냄비 등 기본 생활용품을 사서 돌아왔고, 무거운 가전과 청소도구는 Amazon에서 주문했다. 특히 Amazon Prime Student는 대학생에게 6개월 무료 체험과 익일 배송 서비스 등을 제공해 초기 정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옷이나 방수 가방은 Primark(의류, 잡화류는 여기가 제일 싼 것 같다.), 기타 잡화류는 Poundland(영국의 다이소), 자전거는 칼리지 중고 장터와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구했다. 아기 장난감과 각종 소모품은 Amazon과 AliExpress에서 주문하여 생활에 필요한 구색을 갖춰갔다.
아내는 아이와 함께 케임브리지 대학의 NVS(Newcomers and Visiting Scholars)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영어 회화와 취미활동을 통해 신입 연구자 가족의 적응을 돕는 정착 지원 모임이다. 또한 인근 공원과 시립 도서관을 오가며 육아에 전념하고 있고, 나는 평일에는 학업에 집중하고 있다.
도착 후 정착까지는 약 한 달이 걸렸다. 아마 귀국 전 짐을 정리할 때도 비슷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짧은 1년의 거주 기간이 벌써부터 아쉽지만, 이 시간을 소중히 써서 의미 있는 한 해로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