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정보학 #도서관 #NGO #지금은개발자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첫 직장은 도서관이었고, NGO 단체를 거쳐서 지금은 개발자로 일하고 있어요.
첫 직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는 사실 그냥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냥 열심히 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문턱이 너무 높았어요. 생각해보면 치열하지 않았던 데가 없었던 거 같아요. 어느 정도 내 노력 정도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되었던 것 같고 쥐어짜는 정도는 해야 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노래를 하고 싶었었는데 계속 용기를 못 내다가 결국엔 포기해버렸던 거 같아요. 뭐든 열심히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던 거에요. 대충대충 하다가 서울로 대학교는 결국 못 가는구나 깨달았죠. 꾸준히 했던 일이라면 중학교 때부터 계속 도서부를 했었어요.
그래서 책에 관련된 과를 가면 좋겠다 싶어서 2년제 문헌정보학과를 갔어요. 입학을 하고 나니 교육과정이 문헌정보학과와 아동학이 합쳐져 있다는 게 반전이긴 했지만요. 2년 공부하고 바로 서대문에 있는 도서관에 취업해서 1년 동안 일했어요.
취업하고 나니 어떻던가요?
저는 2년제 나오고 나니까 책에 나온 거 공부한 수준이고 제가 아는 게 너무 부족한 느낌인 거에요. 이게 뭘까. 다른 대학교도 다 이런 상황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사실 전문대학교 수업이 토론한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책에 있는 내용 읽어주는 수준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편입을 잠깐 준비도 했다가 그냥 포기했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목숨 바쳐서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은 못되나 봐요.
도서관에서 일해보니까 책이랑 가까이 있는 건 좋은데, 내가 이렇게 소모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계약직이었고 월급도 적었거든요. 도서관이 늦게까지 해서 퇴근 시간이 늦기도 했고요. 제가 일회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고요. 불특정 다수인 이용자를 계속 응대하는 것도 힘이 들었어요.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또래여서 그 친구들하고 지내는 재미로 버텼던 거 같아요. 정확히 이유를 모르겠지만 일하는 게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그냥 직장도 학교처럼 다녀야 하니까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때는 사람들 대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도서관에 있는 사람 중에 공익 요원들, 사무실에 있는 정규 직분들하고의 관계까지 생각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저를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었던 거 같아요.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생활과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해서 그런지, 저는 뭐든 지 오래 하는 걸 못하겠더라고요. 주변에서 저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나는 왜 이러지"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거 같아요. 도서관은 이용자로 오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그만뒀어요. 그 후에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1년 갔어요.
워킹홀리데이 가서는 뭐 했어요?
사실 별 생각 없이 뭘 해도 좋을 것 같았어요. 딱히 목표도 없고 그냥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싶어서요. 새로 도전한다는 느낌이 좋기도 하고요. 처음엔 좀 쉬면서 어학원을 한 달 정도 다녔어요. 이제 일을 구하려고 하는데 일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에요. 제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막 부딪혀야 하는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영어로 이력서 돌리다가 결국 한국식당에서 일하다가 호주에서 만난 친구 소개로 공장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냉동식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햄버거나 샐러드를 포장하는 일이었어요. 6개월 정도 일했는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랑 기계 소리 나는 데에서 똑같은 일만 하니까 정신 육체가 다 힘들더라고요. 도서관하고는 다른 힘듦이 있었어요.
돌아와서는 뭐 했어요?
돌아와서는 엄마 가게 일을 도왔어요. 엄마가 조그만 음식점을 하고 계셨거든요. 그때 상담에도 관심이 있어서 버스에서 청소년들 상담해주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다녔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혜화역에 버스를 정차해놓고 청소년들 이야기 듣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자원봉사하고 사이버대학교에서 독서치료사 공부도 하고 가게일 돕고 하면서 1년을 보낸 거 같아요. 그 후에 자원봉사 담당 직원분이 NGO를 소개해주셔서 면접 보고 관련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NGO에서 1년 6개월을 일했는데, 제일 오래 일했던 곳이에요. 저는 항상 뭔가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NGO를 그만둔 계기는 뭐였어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뭔가를 오래 못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NGO에서 일하면 보람은 있는데, 좋은 일 하는 데 제 에너지를 쓰는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너를 여기에 불태우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어요. 사회문제는 끝도 없이 일어나고 거기에 맞는 사업이 계속 시작되니까 끝이 없는 느낌이 들었어요.
게다가 지금 하는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새 사업을 계속 따왔어요. 당시에 서울시 지원을 받아서 가출청소년들이 와서 쉴 수 있고, 활동가들이랑 만날 수 있는 카페를 만들었어요. 저는 활동가로 취업을 했는데 단체의 일도 하고 카페의 일도 해야 했어요. 어떤 날은 카페 당직도 하고, 축제가 있으면 그거 준비하기도 하고요. 좋은 일을 위해서 제가 너무 소모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파머컬쳐 캠프를 갔다가 자연이 뭔지 생각하게 되고 귀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 자급자족, 생태적인 삶에 매료되었어요. NGO 일에 지칠 때쯤 귀촌을 하고 싶어져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NGO 그만두고부터는 어떻게 살았어요?
그만뒀을 때가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더 고달파졌었어요. 순창에 귀농귀촌센터 한달살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숙박시설에 머물면서 귀농센터에서 관련된 수업을 듣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서울에 왔는데, 같이 수업 들었던 언니가 귀농할 집을 구했다고 해서 같이 살아볼 마음으로 다시 순창에 내려갔어요.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시작할 때는 잘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 청소년기에 꿈꾸는 그런 거 있잖아요. 나는 특별하고 내 인생은 특별할 거라는 생각이요. 저는 귀농·귀촌도 그렇게 잘 풀릴 줄 알았거든요. 근데 결론적으로는 귀농에 실패하고 한 달도 못 돼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시골에서 생태적인 삶을 사는 게 목표였는데, 여기서 이제 나 뭐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불안해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같이 갔던 언니가 같이 수업 들었던 남자분이랑 연애를 시작해서 제가 괜히 끼어있는 게 불편한 게 되어버렸어요. 아마 그 둘은 결혼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귀농에 성공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당시 시골에서 얻을 수 있는 일도 없고, 귀농센터에서 뭘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날 사람도 없고 여기 있어서는 시간만 낭비하겠다 싶어서 서울로 왔어요. 서울로 와서는 기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또 꽂혔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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