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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글 Sep 20. 2020

9번 참여자 인터뷰 - 2 (*유서 첨부)

9번 참여자 인터뷰 - 1

어떤 기술을 배웠어요?

국비로 디자인을 배웠어요. 원래 평소에도 삽화랑 포토샵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배우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즐겁게 배웠어요. 움직이는 게 재미있어서 웹디자인을 공부해서 취업했어요. 전화로 영업해서 얻어걸리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그런 회사였어요. 업체 특성상 빨리빨리 결과물을 뽑아내야 하는데 제가 잘 못 하니까 조급한 마음이 자주 들었어요. 업무도 과다했던 것 같긴 해요. PC, 모바일용 홈페이지를 디자인하고 자바스크립트까지 손볼 줄 알아야 했거든요. 할 일이 계속 쌓이니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특히 사수가 성격이 정말 안 좋았어요. 저는 이제까지 그렇게 저한테 심한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말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디자인을 만들어서 컨펌받으러 가면 항상 잘못한 게 뭔지 물었어요. "여기에서 뭘 잘못한 거 같아요?"라고 했던 것 같아요. 대답을 잘 못 했던 거 같아요. 폰트랑 크기 뭐 이런 거를 얘기를 해줬던 거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요.


퇴근이 늦은 것, 주말 출근해야 하는 것까지 참을 수 있었는데 그 사람한테 작업물을 확인받을 때마다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상태까지 되더라고요. 그만둘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사수가 신입사원들을 부르더니 "너네는 일이 안 끝났는데 퇴근을 왜 하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말 듣고 아 안 되겠다. 이제 끝이다 싶어서 바로 그만뒀어요. 3개월 만에 또 그만둔 거죠.


그 후에는 뭘 했어요?

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자바스크립트를 배웠어요. 그 후에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개발자로 취업했어요. 취업은 했는데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에요. 개발 중에서도 말단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간단하게 하는 수준의 일이어서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해요.


직장을 자주 옮기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일이 하기가 싫었는데 왜 하기 싫을까 생각해봤는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 하다 보니 하기 싫어졌던 것 같아요.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알고 필요한 것도 아는데 참으면서까지 하는 게 저는 안 되는 거에요. 친구들도 맨날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서 계속 버티는데, 저는 그 계속이 잘 안되더라고요.


취업할 때마다 나에게 이게 아니면 또 뭐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요. 어느덧 30대 초반이 되었는데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고 기술도 얄팍하니까 성실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나 봐요. 그래도 제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이제 힘이 다 빠진 상태인 것 같아요. 사람들 붐비는 틈에 껴서 출퇴근하는 거까지 너무 힘들어지더라고요. 못 버틴다는 게 스스로가 스트레스였는데, 지금 회사는 좀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어요.


지금 회사는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운이 좋으면 이번 연도까지는 다닐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제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해서 더 힘들었나 봐요. 사회에서 말하는 거에 휩쓸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에서 갖고 싶은 가치관을 접하면 휘둘리기도 했거든요. NGO일 그만두고 나서 그만두는 것을 반복하면서 그때부터 굉장히 우울해지기 시작했어요.


우울할 땐 뭐 했어요?

우울한 거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요. 한참 우울해지면서 진짜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거 같아요. 현실 도피성도 있었던 것 같고요. 나는 더는 아무런 노력도 못 하겠는데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불안해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어요. 그런데 세상 사는 사람들이 너무 이상했어요. 삶은 너무 칭송받는데 죽음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거잖아요. 그때 자살한 사람들의 기사를 찾아보기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봤는데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고 중요한 것에 집중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자꾸 뭔가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초조해져요. 비우면서 가볍게 살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삶이 중요하면 죽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이 끝나면 죽음이 오는 게 아니라 죽음은 삶의 일부라 생각해요. 죽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좀 더 가볍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때로는 제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종교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 있어요?

종교가 있는 건 아닌데, 무소유를 말하는 거 불교밖에 없는 것 같아서 끌려요. 물건을 많이 쌓아두면서 고통스러워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최근에는 제가 원룸을 단기계약해서 혼자 살고 있어요. 이제까지는 계속 가족들이랑 같이 살았거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나한테 필요했다고 느끼고 있어요. 좁기는 한데 제게 필요한 물건만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가족들이랑 같이 살면 엄마 아빠가 집주인이니까 부모님이 필요한 거로 가득 차 있잖아요. 언제부터인가 쌓여있는 물건을 보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짐이 적으니까 지역에서 숙식 제공해주는 일자리도 가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살면서 나를 힘들게 한 관계는 무엇이었어요?

어떤 특정인하고는 아닌 거 같고 그냥 사람에 대해서가 항상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베스트프렌드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인데, 저는 그걸 항상 못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드라마나 사회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딱 얘랑 나만 둘이 완전 끈끈한 얘들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이 있는 반면에 저는 관계의 깊이도 얕은 느낌이 들어요. 나는 왜 더 나아가지 못하지? 이게 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사람을 만날 때 제가 먼저 마음을 닫아버린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마음을 열지 않으니까 정작 누군가 있었으면 할 때는 곁에 또 아무도 없었고요.

이제는 제가 기본적인 에너지가 떨어지니까 사람 만나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 자신과 좀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요. 또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때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어떻게 죽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단식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봐요. 스콥 니어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곡기를 끊고 죽었다고 들었어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락사도 선택지에 있었으면 좋겠고요. 제가 죽을 때쯤 되면 죽음의 경험도 상품화되지 않을까요. 뭐가 되었든 제가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아직 세상에 미련이 있는 것 같아요. 죽고 싶으면서도 살고 싶고, 죽고 싶다고 하면서도 계속 살아갈 방도를 찾아요. 제 이런 모습이 싫긴 하지만 이런 모순된 제 마음도 받아들여야 하는 거 같아요.


유서는 처음 써보는 건가요?

네, 사실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잘 안 오네요. 왠지 유서라고 하면 멋있게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유서 쓰는 것도 뭔가 욕심인 거 같아요. 죽어서도 멋있는 걸 남기고 싶은 욕심인 거 같아요. 뭔가 남들이 읽어보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엉망진창으로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써볼게요.


책 읽다가 봤던 내용인데 어떤 그림을 보고 누군가 저거 엉망진창이라고 이야기했데요. 그걸 듣고 그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엉망진창인 게 도대체 뭔데? 네가 100% 엉망진창인 걸 여기에 그려봐”라고 이야기를 했데요. 저는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엉망진창이라는 게 정의할 수 없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다르잖아요. 그 글을 읽으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래서 엉망진창으로 써보고 싶어요.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점점 행복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는 먹고 싶은 거 요리해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한 후에 방에서 쉬면 좋아요. 그냥 그런 상태가 좋은데 그게 행복인지는 모르겠어요. 보통 우울하다고 하면 항상 극복해야 하고 떨쳐내야 하는 거로 생각하잖아요. 근데 좀 멈춰봐, 뒤도 좀 돌아봐, 다르게 살아봐 라고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다고 느껴요. 여태까지와는 또 다르게 살아보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항상 행복할 순 없고,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끊임없이 정의하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고, 여행을 꼭 가야하고 너무 이런 거에 휘둘리며 살았던 거 같아요. 에너지가 고갈되고 나서야 저 자신을 좀 더 뒤돌아보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100% 엉망진창인 상태로 살아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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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들의 유서' 입고처

https://linktr.ee/hong_ge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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