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언어가 만나는 지점
“중국 고대의 성현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낫고, 좋아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낫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넘어, 학문을 진정으로 즐기는 자세야말로 깊이 있는 배움과 자기 성장의 출발점임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떨까요? 입시와 자격증, 성적 중심의 주입식 학습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공부는 고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단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반의 지적 수준, 사고의 깊이, 비판적 사고의 부재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역사 교육은 안타깝게도 단순한 암기 과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의 연대와 결과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을 끈질기게 탐구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전공을 기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조선이 왜 그토록 외침에 취약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조선의 정치 구조, 끝없는 당쟁, 그리고 양반 중심의 신분제도가 임진왜란의 비극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할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 있는 통찰의 공간으로 되살아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은 위험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의 위험성과 비판적으로 사고하려는 지적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첨예한 이념 갈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는 성찰의 태도와 깊은 생각의 빛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결국 끝없는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말 것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존엄성의 상실’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력 감퇴와 치매가 대표적입니다. 최근 연구들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학습이 두뇌의 기억력 감퇴를 늦추고, 나아가 노년기 치매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외국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뿌리와 구조를 이해하며 배우는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 단어의 어원을 분석하고, 한자와 연결 지어 학습하면 기억에도 오래 남고, 흥미도 유지됩니다.
강상원 박사는 단언합니다. “한자를 알지 못하면 영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할 수 없다.” 그의 말은 번역이 단순한 기술이 아님을 일깨웁니다. 언어의 뿌리를 더듬고 그 속에 흐르는 철학적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참된 번역이 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사유 또한 한층 깊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貧(가난할 빈)’**이라는 한자는 **貝(조개 패-조개껍데기, 돈)**와 **分(나눌 분, 나눈다)**의 조합입니다. 재물이 나뉘어 부족해지는 모습에서 ‘가난’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이처럼 한자는 단순한 문자라기보다, 시각적 사고를 자극하는 그림 문자입니다.
여기서 **‘貝(조개 패)’**는 고대에 실제 화폐로 사용된 조개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分(나눌 분)’은 칼(刀-칼도)로 물건을 나누는 모습 (八-여덟 팔)에서 유래한 글자입니다.
이처럼 각각의 부수(部首)와 의미를 이해하면 다른 단어들과의 연결이 쉬워지고, 사고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한자는 느린 속도로 깊이 있게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노년기 학습에도 매우 적합한 방법입니다.
한자책 한 권을 바탕으로, 직접 한자 뜻을 영어로 번역하는 학습을 해보세요. 단어 하나하나가 철학과 문화, 의미의 흐름을 담고 있습니다.
'貧-가난할 빈' :
재산(조개 패-貝☞돈, 재물)이 나누어져서(나눌 분-分☞나누는 일) 작아지고, 결국에는 가난해진다는 뜻이다.
"貧 – ‘Bin’, meaning ‘poverty’ or ‘poor’:
The character is made up of the components for wealth or money (貝, meaning ‘shell’ or ‘currency’) and division or splitting (分, meaning ‘to divide’). It conveys the idea that one’s wealth is divided and reduced, eventually leading to poverty.
나의 영어 공부 비법 중 하나는 ‘음절이 표기된 영어 사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LONGMAN' 사전으로 ‘property’를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prop‧er‧ty S2 W2 /ˈprɑːpərt̬i ǁ ˈprɔpəti/ [명] (복수형 properties)
*(건물∙토지 등의) 재산, 부동산 소유물, 소지품 (personal property 개인 소유물)
*(주로 복수형) 특성, 속성 (= characteristic, quality)
이 표기를 통해 우리는 ‘property’가 세 음절(prop-er-ty)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어원사전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어원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prop : ‘받침대’, ‘지지대’를 뜻하는 어근으로,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지탱하는 근본을 의미합니다.
*-er : 행위자나 역할을 나타내는 접미사로, 여기서는 ‘지니는 것’ 또는 ‘속성’을 확장적으로 표현합니다.
*-ty : ‘성질’,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로, 추상적 개념을 명사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property’는 본래 ‘사물이나 개념을 지탱하는 본질적 성질’을 뜻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소유’, ‘재산’, ‘속성’**을 포괄하게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음절이 명확히 구분된 사전(LONGMAN 등)과 어원사전을 함께 활용하면, 영어 단어를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 구조를 이해하는 학습이 가능합니다. 학습자는 단어를 이루는 음절과 어원을 분석함으로써 단어가 지닌 의미의 구조적 틀, 즉 ‘의미적 뼈대’를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적 이해는 기억의 지속력을 높이고, 낯선 단어를 만났을 때에도 그 뜻을 스스로 유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줍니다.
김원수 법사는 “대각(大覺)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소각(小覺)은 이루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삶 속에서 얻는 작은 깨달음들이 모여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깨달음'을 지식과 무관한 지혜의 영역으로만 생각하지만,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혜가 삶의 목적이라면, 지식은 그 목적에 이르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목적과 과정이 함께할 때 삶이 완성되는 것처럼, 지혜와 지식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둘을 분리하여 지식만을 숭배하거나 지혜를 신비의 영역에 가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세상은 혼탁해지고 학문은 근본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세속의 학문과 내면의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사회적 성공과 정신적 성숙을 함께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소각'을 이룬 사람일 것입니다. 이처럼 세속적 성공과 정신적 성숙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잡힌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공부의 방향입니다.
배움은 나이에 얽매이지 않으며,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확장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특히 동양의 지혜가 담긴 한자와 서양의 철학을 품은 영어를 함께 배우는 것은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통찰의 길을 열어줍니다. 단어의 어원을 더듬고 글자의 뜻을 음미하는 순간, 우리는 언어가 아닌 자기 자신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작은 깨달음의 축적이야말로 김원수 법사가 말한 ‘소각의 길’이며, 작지만 진정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삶의 여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