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8 킹스데이

by 글마중 김범순

- 네덜란드 라익스 국립박물관 앞 광장 -


4월 27일은 국왕 생일을 기념하는 킹스 데이로 공휴일이라 집집마다 국기가 걸렸다. 사람들은 네덜란드 상징 색인 오렌지색 티셔츠와 목걸이로 치장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작은손녀는 전날 만든 쿠키를 팔러 친구들과 암스테르담 중심가로 나가고 딸 내외와 구시가지 중심지 암스텔빈 기차역 부근으로 갔다. 오렌지색 줄 깃발이 나풀거리고 쿵쿵 땅이 울릴 만큼 음악 소리가 커서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렸다.


- 한산하던 거리를 인파와 음악이 가득 채웠다 -

자동차 통행을 금지시킨 길가에서는 커다란 보자기에 쓰지 않는 물건을 내놓고 싸게 팔았다. 어떤 집은 온 가족이 책, 옷, 장난감, 그릇을 보기 좋게 진열한 뒤 그냥 가져가라는 안내문을 써놓고 임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딸과 시내 중심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 특별전시를 관람하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미술관과 각종 전시관을 한 곳에 배치해 품격 높은 문화생활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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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익스 국립박물관 앞에 축제 깃발을 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있다.

-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행진을 시작한 킹스데이 축하 공연단 -


줄 서서 기다리다 드디어 박물관에 입장했다.

- 입장권 대신 손목에 띠를 매 줬다 -

- 유리와 아크릴 구조물이 압도적인 천장 -

입구 바로 옆에는 관람객이 음료와 음식을 먹으며 쉴 수 있는 넓은 휴게 공간이 있었다. 긴 시간 머물며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국가가 예술을 얼마나 사랑하고 예술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며 예술품 감상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곳곳에 있는 낯익은 조각상 -

박물관 안은 오래전부터 마음먹고 예매한 관람객들이라 그런지 학생과 젊은이는 별로 없고 장년과 노년층이 가득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딸과 나만 요란한 오렌지색 티셔츠에 목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관람객들은 우리 모녀가 몹시 귀엽고 대견스러워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다는 듯 흐뭇하게 웃어줬다. 이른 두 살에 외국인들에게 사랑의 눈길을 듬뿍 받다니! 딸 아니면 못해 보았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1층 전시실에 낯익은 작품들이 있어 먼저 둘러보았다.

- 동남아시아 종교 조각 작품 -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년) 전시관에 발을 들였다.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 조용하고 차분한 풍경. 마치 사진인 듯 정밀 묘사가 뛰어나다 -

베르메르의 풍경화 배경은 거의 그의 고향 델프트라고 했다.

- 유화로 세밀하게 그린 인물화. 풍경화와 달리 왼쪽에서 빛이 비추이게 표현했다 -

교과서에서 본 낯익은 그림이 눈에 띄자 가슴이 설렜다.

이 그림 역시 왼쪽 창에서 빛이 들어온다.

- 우유를 따르는 여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너무 혼잡해서 관람객도 같이 찍혀 이 사진은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다운로드했다.

베르메르는 총 37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루브르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품 등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작품을 전부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이다.

“엄마가 복이 많아. 미국 사는 친구가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이 전시 보려고 표를 예매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온다고 나한테 주지 뭐야. 그런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만 계약한 대로 두 달 전시 끝내고 본래 있던 곳에서 회수해 갔어요.”


점묘법으로 그린 털목도리나 머리카락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려고 그림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바람에 관리인의 지적을 여러 번 받았다. 작품마다 액자 디자인을 다양하게 만들어 작품을 돋보이게 한 것도 높이 사고 싶었다.


램브란트 전시실을 나와 2층으로 올라갔다. 고딕 양식의 천장과 놀랍도록 드높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래를 굽어보고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 거룩하고 성스러워 신심이 절로 솟았다 -

옆 공간으로 들어갔다. 흰 바탕에 아름다운 문양을 넣은 로코코 양식의 화사한 천장에서 여러 개의 도르래와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움직였다. 하얀 꽃송이가 제각각 오르내리며 활짝 펴졌다 오므라져 관람객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 어떤 꽃송이는 머리 위까지 바짝 내려와 파라솔만큼 커졌다 순식간에 오므라지며 올라갔다 -

국립박물관에는 12-13세기 우리나라 도자기도 있다고 했다.

제대로 관람하려면 닷새 정도가 소요된다고.

사위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그사이 사위는 작은손녀와 함께 있다 팔고 남은 쿠키 세 개를 사 왔다.

박물관 앞 노천카페에서 민트 티와 작은손녀가 만든 쿠키를 먹었다.

베이킹파우더가 적게 들어갔는지 좀 딱딱했지만 달걀, 우유, 버터가 많이 들어가고

작은손녀가 만들어서 그런지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있었다.

- 작은손녀는 쿠키 스물두 개를 만들어 1유로에 두 개씩 열여덟 개 팔았다 -


저녁 식사를 하러 와규 맛집으로 소문난 일본식당으로 갔다. 와규는 일본 육용소종으로 근내 지방도가 높아 고기가 연하고 오메가3, 오메가6,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고급육이다. 바짝 익힌 불고기와 갈비찜에 길들여진 나는 핏물이 뚝뚝 듣는 생고기가 무척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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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와 손녀가 맛있다며 빨리 먹어보라고 권해서 한 점 집어 들고 한참 망설이다 입에 넣었다. 실크처럼 부러우면서 풍부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딸이 말했다.

일본은 원래 고기를 구워 먹지 않는데 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배워 갔다고.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절간에 빈대가 안 남아나고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고 했다.

이를 어쩌나?

앞으로 한우 사 먹느라 우리 집 가정 경제가 휘청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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