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는 프렌치프라이를 먹지 않는다

찐 프렌치 간식과 가정교육의 상관관계 일러스트 by 하노이민언냐

by 하노이 민언냐

딩동~!


학교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정확히 3분이 지난 3시 33분!


문을 열자, 클로에와 마농이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승강기 대신에 열심히 계단을 타고 뛰어내려왔을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클로에와 마농은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내가 “How are you?”하고 묻자 “Good~.” 하고 대답하는 아이들. 그리고 쩡이와 쭌이는 한 걸음에 달려와 서로의 학교 수업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이야기 꽃을 피운다는 게 바로 이런 거겠구나~할 정도로 까르르까르르 웃고 떠들었다.

이번 주 금요일은 우리 집 차례다.


지금 우리는 슬기로운 록다운 생활의 육아 품앗이 현장을 보고 있다.

환경에 따라 생물은 진화한다고 했던가. 다윈의 진화론처럼 육아도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에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었다. 여기서 생존을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육아 품앗이’다. 무슨 육아 얘기하면서 다윈의 진화론까지 얘기하냐고 물으실 텐가? 지금 같은 록다운 시대에 이다 더 시급한 난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

나는 정각 4시, 간식시간에 맞춰 식탁에 간식을 준비해 두었다. 오늘의 간식은 쩡이와 쭌이가 좋아하는 프렌치프라이다. 기름에 갓 튀겨낸 프렌치프라이에 소금과 아주 약간의 후추를 30 센티 위의 상공에서 뿌린다. 심혈을 기울여 촵 촵 촵~ 채를 흔든다. 채 속에서 황금빛 프렌치프라이들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이리저리 춤을 춘다. 프렌치프라이를 싫어하는 어린이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여태껏 프렌치프라이를 거부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Snack time!”하고 부르자 배가 고팠는지 아이들이 일제히 식탁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 찰나의 표정! 그랬다. 그건 분명 0.1초의 짧은 순간이었다. 클로에와 마농의 얼굴에선 ‘흠칫’ 하고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봤나 하고 넘겼다. 내가 내놓은 건, 냄새가 강한 청국장도, 외국인에게는 비주얼 자체가 충격이라는 번데기도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받는 국민 간식! 아니 세계인의 간식!

간식계의 BTS! 프렌치프라이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아이들은 두 명씩 동갑내기끼리 짝을 이루어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두 프렌치 소녀들은 사과주스를 조금 마실 뿐, 프렌치프라이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쩡이와 쭌이는 아주 맛있게 프렌치프라이를 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케첩까지 리필해가며 아주 야무지게 말이다. 맛에는 꾀나 까다로운 우리 쩡이가 별말 없이 잘 먹는 걸 보면 맛에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 쭌이와 쩡이를 보고만 있는 클로에와 마농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Are you okay?"


내가 괜찮냐고 물었다. 마농은 무슨 말을 하려다 언니인 클로에의 눈치를 보며 말을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마농의 시선이 프렌치프라이에 머물렀다. 그 눈치를 챘다. 범인은 바로 너! 프렌치프라이로구나!

그때 필요한 건 뭐? 스피드다!

재빨리 냉장고의 문고리를 잡았다. 냉장고 안에 간식을 대체할 만한 것들이 뭐가 있었더라. 그렇다! 다행히 말린 자두 한 봉지와 ‘안남 고메’에서 산 신선한 유기농 사과 두 알이 남아 있었다. 두 프렌치 소녀들은 사과와 말린 자두를 내놓자, 그제야 간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고비 넘겼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프렌치프라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오전에 피비와 나눈 톡이 떠올랐다.

“피비, 안녕? 오늘 오후에 학교 수업 마치고 클로에랑 마농, 바로 보낼래?! 애들 우리 집에서 같이 간식도 먹일게~”

“ super!! Oui, merci beucoup, Min.”

“프렌치인 너희를 위해 프렌치프라이를 간식으로 준비할 거야.”

“하하하! LOL”

그녀의 LOL이 그냥 LOL이 아님을 그제야 깨달았다.

피비는 파리에서 온 세 딸의 엄마! 우리는 아이들도 엄마들도 사이가 좋은 이웃이자 친구 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비 부부와 우리 부부는 동년배에 결혼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구 반대 편에 살던 이 두 가족은 가족계획의 사이클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쭌과 클로에가 딱 하루 차이로 태어났고, 동생 마농과 쩡이 또한 동갑이라는 게 친해진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제 만 2살도 채 안된 우리 레지던스의 마스코트, 막둥이 아기 천사의 사이클은 내 생에서 영원히 놓쳐 버리는 걸로 한다.(남편은 피비의 막내를 볼 때마다, 늘 셋째를 위해 나의 빈 틈을 노린다. 하지만 독박 육아는 이제 그만~!)

피비와 나는 서로 생활의 패턴이 비슷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예를 들면 홈스쿨링! 아이들이 학교의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나면 엄마들이 모국어나 자국의 수학 과목 등을 직접 집에서 가르친다. 프랑스인들은 자녀의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참여도가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학교의 과제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은 물론 함께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피비는 자발적 홈스쿨링이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강제성 홈스쿨링이라는 것이다. (호떠이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게 학원이고 과외선생님이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평일 학교의 온라인 레슨과 간식 시간이 끝나고 나면 피비의 집에선 클로에와 마농이 피비와 프렌치, 지리 숙제를 하고 있다. 그리고 두 층 아래인 우리 집에서는 쩡이, 쭌이가 나와 함께 국어나 사회, 수학 숙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레일에서 함께 수영을 하고 있진 않지만, 우리는 늘 다른 편 레일에서 혹시나 분노에 꼬르륵 빠져 익사 직전은 아닌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전한다. 함께 아이들을 향한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동지애가 뿜 뿜 솟아오른다. 홈스쿨이라는 전쟁에서 만난 피비와 나는 순식간에 끈끈한 전우애가 들끓는 연합군이 되어 버렸다.

​ 프렌치프라이 사건 다음 날, 나는 피비와 함께 장을 보러 마트로 향했다. 마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이 동그래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간식으로 프렌치프라이를 내놓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피비는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진짜? 민, 너 진심으로 프렌치프라이를 한다는 뜻이었어?"


그녀도 내가 프렌치프라이를 스낵으로 준비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 프렌치 죠크 french joke쯤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흔히 프랑스에서는 프렌치프라이를 간식으로 먹는 일은 없다고 했다. 프렌치프라이는 그들에게 한 끼 식사로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라는 것! 나 또한 이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얘기하고 웃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물음표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럼 왜 클로에와 마농은 그때 내게 얘기를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우리는 방학이면 매일 서로의 집에 번갈아 초대하고 놀았다. 어디 그뿐이랴.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수영장에서 만나 함께 놀던 사이가 아니던가. 피비는 그런 딸들의 행동이 놀랍지 않다고 덧붙였다. 프랑스에서는 어릴 때, 아이들의 가정교육을 엄격히 시킨다고 한다. 다른 집에 초대받아 가는 경우에는 특히 그 집의 규칙과 가풍을 존중해, 예의에 어긋나는 말과 언행은 절대 하지 않도록 엄격히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매일 보는 친구라고 해도 예의를 지키는 건 다른 문제라고 했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문화충격이었다. 프렌치프라이를 간식으로는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프랑스 가정교육이 한국보다 더 엄격하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자기 개성을 존중하는 그야말로 자유분방의 아이콘이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프렌치프라이가 밥이냐 간식이냐에 대한 갑론을박을 다시 펼쳤다. 나는 아마 일본에서도 프렌치프라이는 한 끼의 식사보다는 간식의 개념일 것이라고 얘기했고 피비는 동양권에서는 프렌치프라이가 간식이냐고 신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마트에서 돌아와 로비에 도착했을 때, 때 마침 프렌치프라이에 대한 논의를 종식시켜 줄 아키에가 보였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키에에게 달려갔다. 로비에서 일본에서 프렌치프라이가 한 끼의 식사인지 간식인지를 묻는 설전이 다시 벌어졌다. 아키에의 대답은 과연?! 역시 간식!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왠지 승리자가 된 듯 으쓱해졌다. “See?!”하고 말하며 슈퍼 맨이 된 양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 보였다. 피비와 아키에도 그런 나를 보고 덩달아 크게 웃었다. 동양권과 유럽의 다른 음식 문화를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내가 튀겨 올린 프렌치프라이 하나가 크게 웃을 일 없는 우리의 일상에 큰 즐거움을 준 것이다.

​ 프렌치프라이가 이름과 다르게 프랑스의 음식이 아니란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프렌치프라이는 내게 햄버거 세트에서 조차 추가해도 되고 빼도 되는 옵션이자 간식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까?

쭌이와 쩡이는 그날 밤, 내일 간식도 프렌치프라이를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며 자러 갔다. 너무 맛있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이다.

그렇지, 프렌치프라이는 한 끼로 먹기엔 너무 가벼운, 한국인인 우리들에게는 딱 간식이다.

P.S. 피비와 나는 어느새, 쇼핑 메이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원래는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함께 런치를 먹는 사이였는데……또 어느새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테이크 아웃한 연어 덮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또 어느새, 코로나의 여파로 인한 록다운에 우리는 서로의 육아 품앗이를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피비와 함께 쇼핑을 하면서 나는 찐 프렌치 간식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산 (분명 작은 안경을 코에 걸친 백발의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고 있던 그 과자들) 수많은 프렌치 이름의 스낵들은 짝퉁이었다는 게 더 큰 충격이었지. 내가 그동안 사온 브랜드의 과자를 보여주니, 피비는 그 브랜드를 하노이에서 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뭘 먹고 있었던 거냐.

그러고 보면 베트남에는 ‘한국 제품’이라고 붙은 정체불명의 마스크팩이 지천에 널렸다. 죄다 진짜 한국에서 파는 제대로 된 상품이 아닌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듯 프렌치 ’French’라고 적혀있다고 다 프렌치가 아니다. 순진하게 속지 말아야겠다.

쩡이는 네모난 귀퉁이부터 톡톡 떼어먹는 재미가 쏠쏠한 쁘띠 뵈흐(쩡이와 쭌이가 클로에와 마농의 집에서 직접 배워 온 맛있게 먹는 법이란다.), 나는 하트 모양의 빨미또, 그리고 쭌이는 초코가 발린 ‘쁘띠떼콜리에흐’가 최애 간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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