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 정승빈
2025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1개의 행정명령과 함께 화려한 복귀를 세계에 알렸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정책을 펼치며, 미국 대통령이 세계에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었다. 그 중 가장 쟁점이 되는 정책은 관세정책인데, 트럼프는 불공정하고 불균형한 기존의 무역을 비난하며 빼앗겼던 미국의 부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리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4월 2일, 백악관에서 차트를 공개하며 세계를 향한 상호 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펭귄들만 서식하는 무인도에도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을 비롯한 몇 개의 국가의 관세율이 실제와 다른 문제도 있었으며, 관세율이 합리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수출액과 수입액으로 계산된 것이라는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정책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 주가는 폭락했고 월스트리트에서는 이틀 동안 1경 원이 사라졌다. 그러나 4월 9일, 갑자기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는 90일 동안 10%만 부과하겠다는 ‘관세 유예’를 선언해 나스닥이 12%가 상승하는 광적인 변동성을 보인 반면, 중국에 대한 관세는 계속 올려서 145%에 도달하는, “묻고 더블로 가” 관세 정책을 선보였다. 5월 14일에는 제네바에서 대중 관세를 다시 90일간 30%로 조정하며 불확실성이라는 장작에 계속해서 부채질 하는 동시에 필자에게 글을 계속해서 수정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남겼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트럼프가 관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관세는 결국 미국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일 뿐이라고 말하며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왜 트럼프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실현 도구로 관세를 이용한 것일까? 본 글에서는 세계의 ‘기축통화’이자 미국의 화폐인 달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역적자를 분석하여 트럼프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본다. 또한 트럼프를 통해 미국의 현재를 진단하여,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하는 요소들과 그 미래에 대해 논해본다.
History of the Dollar
처음부터 달러가 기축통화였던 것은 아니다. 달러가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은 1944년의 브레턴우즈 체제부터였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패권국이 된 미국은 유럽이 전쟁물자를 미국에 금으로 지불함에 따라 종전 시기에는 전 세계 금의 70%를 차지하게 되었다. 금에 대한 신뢰로 이루어진 브레턴우즈 체제에 따라 35달러당 금 1온스로 달러의 가치는 고정되었고, 타국의 통화들은 달러와의 고정 환율을 통해 금과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금본위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냉전, 베트남전쟁 군비를 위해서 금 보유액을 신경 쓰지 않고 달러를 마구 찍어내자, 미국의 금 보유액과 상환 능력을 믿을 수 없었던 나라들이 상환을 요구했고, 상환 요구를 거절하는 닉슨쇼크가 일어난다. 달러의 신뢰와 가치는 급격히 무너졌고 이를 막기 위해 스미소니언 체제가 시행되었지만, 가치를 방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오일쇼크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과 원유 가격 책정과 그 결제를 오직 달러로 하는 대신, 사우디 왕가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을 구축하는 협정을 맺었다. 역동적으로 산업이 성장하던 시기에 원유를 결제하기 위해서 세계는 달러를 은행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계속 소모되는 석유의 수요가 지속되는 한 달러의 필요성은 영원해졌고, 달러 독점거래를 OPEC까지 확산시키자 미국은 금본위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변동환율제인 킹스턴 체제로 전환했다.
이렇게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든 미국은 달러 패권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지배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걱정 없이 달러를 찍고, 더 낮은 비용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 해외로 인플레이션을 수출하여 국내 물가를 억제할 수도 있다. 미국 물가 억제를 위해 달러가 강해지면, 원유 수입국은 달러로만 거래되는 원유를 구매하기 위해 ‘웃돈’을 주고 수입해야 하며 ‘웃돈’은 각국 수입 물가와 소비자 물가의 상승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 제재를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여 압박도 가하기도 한다. 미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1947년부터 2005년까지 전 세계에 735회의 경제제재를 단행하였는데, 대표적인 수단으로 달러 거래 금지나 특정 국가의 통화 사용 제한 등이 있다. 국제결제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지위로 인해 이러한 제재를 받은 국가는 무역과 금융 활동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600억 원 규모의 횡령 사건은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 횡령된 자금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인해 한국 내 은행에 묶여 있던 60억 달러 가운데 일부였다. 이는 미국의 경제제재가 국제 금융거래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방적인 장점만 있을 수는 없다. 양날의 검인 기축통화가 가진 반대면은 ‘기축통화국은 장기적인 무역흑자를 볼 수 없다’로 요약되는 ‘트리핀 딜레마’이다.
예일대학교 교수, 로버트 트리핀은 1950년대 장기간 지속되었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는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하면 유동성 공급이 줄어들고, 적자가 지속된다면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신뢰도가 저하된다고 주장했다. 기축통화는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야 하는데, 전 세계 사람들이 달러를 결제통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달러가 전 세계로 유출될 필요성이 있으며 이 때문에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달러 유출을 위한 무역적자를 감당해야 한다. 만약 미국이 무역흑자로 전환하여 세계의 달러를 다시 빨아들인다면 유동성 부족으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 외국인들이 달러를 쉽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무역적자가 계속 쌓이다 보면 쌍둥이 적자로 재정 악화까지 가속되어 미국의 부채 규모가 커지고, 임계점을 넘어가면 달러의 신뢰도가 저하되어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 실제로 달러 이전의 기축통화는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이었지만 제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영국은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었고, 낮아진 파운드의 신뢰도로 인해 기축통화의 지위를 달러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역사가 있다.
무역적자는 미국에게 손해인가?
그렇다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비용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자세히 알아보기 이전에 ‘무역적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역적자는 ‘적자’라는 단어 때문에 부정적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동시에 자본수지 흑자라는 양면을 가진다. 국제수지는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자본금융 계정)로 구성된다. 그 중 경상수지는 무역수지와 무역외수지(서비스), 이전수지로 구성된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무역적자가 실제로 적자였는데, 무역에서 적자를 보면 실제로 금이 유출되고 흑자를 보면 금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동환율제에서는 무역수지 적자와 자본수지 흑자가 동시에 나타나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는데, 이는 미국에 대한 해외 자본 수요가 미국인의 해외 자산 수요를 초과하며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됨을 뜻한다. 결국 현재의 무역적자는 미국 경제가 취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 비해서 미국이 시장경제를 잘 운영하여 희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되는 비교우위를 가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국민소득 항등식을 사용하여 자세히 분석해보자. 무역수지는 순수출(NX)로 나타난다. ‘수출 - 수입’을 의미하는 순수출(NX)가 0보다 크면 무역흑자, 작으면 무역적자인 것이다. 국민소득 항등식은 Y = C + I + G + NX이며 Y는 생산, C는 소비, I는 투자, G는 정부지출, NX는 순수출이다. 식을 수정하여 C, I, G를 좌변으로 넘긴다면, Y - (C + I + G) = NX이다. C + I + G는 모두 지출이므로, 생산(Y)과 지출(C + I + G)의 관계로 순수출(NX)를 재정의할 수 있다. 생산이 지출보다 크다면 남은 생산을 수출하므로 무역흑자고, 생산이 지출보다 작다면 부족한 생산을 수입하여 무역적자인 것이다. 지출이 생산보다 많은 상태가 계속해서 유지되는 이상한 구조는 ‘기축통화 달러’의 존재로 유지된다. 일반적인 국가는 이렇게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면 자국 통화가치의 하락으로 해외에서 돈을 차입하기가 힘들어지지만, 달러의 압도적인 신뢰도는 전 세계가 미국 국채를 보유하게 하고, 이는 미국이 돈을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복사기를 돌리면 차도 살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으며 음식도, 옷도 살 수 있다.
저축과 투자의 관점에서 무역수지를 보자. 한 나라의 소득에서 소비와 정부지출을 하고 남은 부분을 총저축(S, S = Sg + Sp)이라고 한다. 즉 S = Y - (C + G)이다. 국민소득 항등식을 다시 정리하면 S - I = NX가 된다. 즉 ‘순수출 = 총저축 – 투자’이므로 총저축이 투자보다 크면 남는 저축을 해외에 빌려주는 무역흑자(해외 자산 취득), 총저축이 투자보다 작으면 부족한 돈을 해외에서 빌려오는 무역적자(해외에 자산 판매)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이 자국에서 생산하는 양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국내 저축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하므로 타국에서 돈을 빌리고 있는, 즉 부채를 쌓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어떤 기업이 1억의 부채를 지고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살 때, 기업의 부채와 자산이 1억 증가했다고 인식할 뿐이지 ‘1억의 적자(손해)를 봤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자는 1억을 투자했지만 산출량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로 부채가 증가(무역수지가 적자)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진짜 손해는 부채를 이용해 투자했지만 그 산출량이 차입 규모에 미치지 못할 때 실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선 식에서 S = I + NX 라는 식을 도출할 수 있었다. 미국처럼 무역수지가 적자인 국가에서 S가 양수이려면, I가 NX의 적자 크기보다 더 크면 된다. 미국의 수입은 생산재와 소비재로 구분되며 그 중 소비재와 식품을 제외한 69%의 수입이 원료, 기계 등 투자를 위한 수입으로 볼 수 있다. 이 69%를 통해서, 미국이 성공적인 투자를 했다면 미국의 S는 증가하며 손해를 보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실제로 미국의 저축은 2008년부터 몇 년간 이어진 금융위기 시절을 제외하면 꾸준히 증가해왔다.
트럼프의 말처럼, 무역흑자국이 미국을 상대로 마냥 뜯어먹고, 착취하고 이용했다고 보기는 힘든 이유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사업가’로 여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필자는 이번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있어서는 그를 ‘정치인’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트럼프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은 1기 때도, 2기 때도 스윙보트의 역할을 해낸 러스트벨트였다. 20세기 대량생산의 메카로써 제조업 호황을 이끈 러스트벨트와 ‘기축통화’ 달러, 그리고 ‘정치인’ 트럼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강달러와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1970년대 러스트벨트는 쑥대밭이 되었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으로 신용화폐가 되어버린 달러가 막대하게 세계로 풀리며 미국은 무역적자를 쌓아갔지만, 외국이 미국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며 달러는 평가절하되지 않았다. 미국이 강달러 기조를 유지하며 러스트벨트의 제조업 경쟁력은 점점 낮아져갔다. 미국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강달러를 포기할 수 없었고, 특히 레이건 정부가 강력한 강달러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많은 제조업체가 도산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러스트벨트 지역민들의 반발이 점차 심해지자 ‘슈퍼 301조’의 시행과 함께 ‘플라자 합의’를 통해서 달러의 가치를 낮추기 보다, 일본과 독일의 화폐가치를 절상시켜 간접적으로 약달러를 만드는 방법을 취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달러는 약해지지 않았고, 미국은 아예 노선을 틀어서 무역수지의 개선보다는 강달러를 통한 자본수지의 균형을 목표로 삼았다. (한편, 일본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의 파급 효과와 단기적으로 바로 나타나는 엔고 현상의 결합으로 최고 호황기인 버블경제를 달렸다.) 이에 더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NAFTA 협정이 체결되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부상하기 시작하며 러스트벨트는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실업률은 급증했고 사람들은 떠나갔으며 공장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러스트벨트는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담시의 배경이 될 정도로 범죄와 함께 쇠락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무역수지의 적자는 자본수지의 흑자이다. 미국이 해외로 뿌린 달러들은 외국이 미국 국채를 사거나, 직접 투자하는 형태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채 수요의 급등으로 채권금리는 하락했고,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으로 미국 증권가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월스트리트와 미국 금융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그들은 넘쳐나는 돈을 실리콘밸리에 투자하여 M7 등 미국의 신화를 새로 썼다. 미국은 끝없이 성장했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우상향했다. 다만, 문제는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가 제조업처럼 많은 인원을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과 IT 업계의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형태였기에 새롭게 바뀐 미국의 산업구조는 소수의 신흥 억만장자들과 함께 제조업 블루칼라 중산층을 말살하는 양극화를 만들어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성장하며 파이의 크기는 커졌지만, 그 파이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스닥은 신이다’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지난 몇 년간의 미국 주식 신화를 기억할 것이다. 트루스소셜에 올라오는 트럼프의 트윗 하나에 휘청이긴 하지만 여전히 시장은 견고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주식 상승의 이익을 공유하지 못했다. 미국 국민의 하위 50%는 미국 주식의 1% 미만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 국민의 절반은 주식의 1%도 보유하지 못하며, 그들은 나스닥의 상승분을 공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성장하므로 물가는 올랐고,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으로 자신들에게 큰 손해를 입힌 월스트리트는 성과급 파티를 열었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인 “Occupy Wall Street”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정치인’ 트럼프는 이러한 정치적 역학 관계를 잘 이해하고 철저히 이용했다.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절망을 지렛대로 삼아 당선되었고, 관세를 통해 떠나간 공장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 시키겠다고, 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친다.
다음과 같은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의 발언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달러와 자본수지, 무역수지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준다.
오늘의 달러는 맑음? 흐림?
이처럼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국가 전체로는 이익을 볼 지 몰라도, 제조업을 필두로 한 특정 산업의 체감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이런 불만을 잘 이해하고 당선되었지만 강달러를 약달러로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는 보여주어도 근본적으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미국은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잘 유지할 수 있을까?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며 현재를 진단해보자.
거대한 부채
달러가 가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위협하는 요인은 미국의 거대한 국가부채가 있다. 2023년 6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 재정 책임법’이 2025년 1월 1일부로 실효됨에 따라 부채한도가 실효 당시의 부채 수준인 $36.22조로 설정되었다. 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채권자들은 이 많은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을지, 혹시 못 갚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며 이러한 불안은 화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2024년 말 기준으로 미국의 부채는 GDP의 124%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게다가 미국이 부채를 갚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이러한 불안을 더 가중시킨다.
2025년 3월 14일, 미국 연방 상원이 마감 시한을 몇 시간 남기고 임시 지출안을 처리하면서 연방 정부의 셧다운 위기를 넘겼다. 2024년 12월 21일 셧다운 위기를 넘긴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미국 연방 정부의 셧다운 위기는 연례행사처럼 자주 벌어지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10번 남짓이다. 셧다운이 실제로 발생하면, 국방, 교통 등 필수적인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는 강제 근무령이 내려지며 이를 제외한 공무원들과 공공기관들은 강제 무급휴가에 돌입하여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된다. 가장 최근의 셧다운은 1기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와 멕시코 국경 장벽 예산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2019년에 35일간 발생했다. 이처럼 미국 연방 정부 셧다운 위기가 매년 찾아오는 연례행사라면, 연방 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는 몇 년마다 찾아오는 특별 행사다. 셧다운은 미국 예산 지출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의회와 협상이 실패하면 발생하지만, 디폴트 위기는 예산 지출을 확정한 다음에 실제로 집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연방 정부 디폴트는 합의한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집행하는 도중 돈이 떨어지면 국채를 발행하는데, 의회에서 정하는 부채한도에 도달하여 더 이상 현금 조달이 불가능할 때 발생한다. 셧다운과 달리 디폴트는 미국의 신용도 및 글로벌 금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실제로 발생한 적은 없다. 매년 디폴트 위기설은 보도되지만 1959년 이래로 90번이나 미국 부채한도가 상향되어 $36.22조에 도달하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부채는 더 큰 부채로 해결하는 미국의 태도는 갚으려는 의지의 부재로 느껴진다.
$36.22조의 국가부채는 미국의 국방비를 넘어서는 $1조가 넘는 이자 비용 지출을 낳는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국방비가 1,000조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붙여진 ‘천조국’이라는 별명이 이제는 ‘이자 천조국’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자는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고정비용이다. 따라서 정부는 예산의 일부를 고정으로 지출하므로 자유로운 행정 집행에 애로사항을 가지며, 재정 부담을 가중시켜 채권을 더 찍는 유인을 제공한다. 미국은 이자 비용으로 GDP의 3.2%를 사용한다. 사회보장제도를 비롯한 고정비용을 제외하면 복지나 국방비 및 기타 지출에서 세출을 줄이는 것이 장기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대책은 향후 10년 간 최대 $4조의 세입을 줄이는 ‘Big, Beautiful’한 감세 정책이었다. 채권을 더 찍겠다는 노골적인 예고는 2025년 5월에 무디스가 미국의 부채와 재정적자를 이유로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함에 따라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피치, S&P 모두 미국의 Aaa등급을 철회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렇게 신용도가 낮아지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더 커지고, 재정 악화의 요인이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쪼그라드는 미국, 팽창하는 중국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두 번째 요소는 미국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에 있다.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던 1960년의 미국은 26%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중국의 GDP는 세계의 17% 수준까지 높아졌다. 물론 26%도 엄청난 수치이고 여전히 큰 차이가 나지만,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지는 상대적 위상이 변화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인 스티븐 마이런이 2024년 11월에 쓴 ‘마이런 보고서’에서 ‘기축통화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경우, 준비자산 제공이 해당국에 미치는 부작용은 적지만 글로벌 경제 성장이 기축통화국의 성장률을 초과하는 기간이 길어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부분을 통해 미국이 이러한 점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달러의 움직임
세 번째 요인은, 중국이 미국의 경제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던 사우디와의 관계가 21세기에 들어서며 냉각되고 있다. 911 테러와 아랍의 봄, 이란 핵협상 등으로 서로 불만을 쌓아가는 상황 속에서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석유를 자급할 수 있게 되어 대외정책에서 사우디의 중요성이 내려가고 아시아가 부상함에 따라 미국은 후티 반군 등 중동 안보 위협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인권처럼 민감한 주제는 건드리며 갈등이 깊어져갔기 때문이다. 한편,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바탕으로 안정적 원유 공급처를 구하기 위해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와 접촉했다. 미국이 아시아에 눈이 팔리자 불안했던 사우디는 자국 이익을 위해 중국과 경제 협력을 지속했고, 2022년 기준으로 사우디의 최대 원유 수출국은 중국이다. 사우디는 SCO(상하이협력기구)에도 가입하고 첨단기술에서도 중국과 활발히 협력하며 심지어는 위안화로 원유를 결제할 수 있게 하자는 말도 꺼냈다. 위안을 통한 원유 결제는 현실화되지도 않았고 미국이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를 두고 보진 않겠지만, 분위기가 이전 같지 않다. 이외에도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BRICS를 조직하기도 했다.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결제 통화의 다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국제 결제 비중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57%의 통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치고 올라온다고 해도 그 결제 비중은 약 4% 수준에 불과하며 유로나 위안의 달러 대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제학자가 대부분이다. 앞서 말했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여전히 달러는 강하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이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주도하는 변화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어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이 세상에서 불변하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명제뿐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이다. 변화는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달러는 세계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통념, 경제가 어려울 땐 달러를 사면 된다는 공식, 미국은 자유무역의 수호자라는 믿음이 이전만큼 공고하지 못하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으니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달러의 시대는 저물고 위안의 시대가 온다는 주장도 아니다. 여전히 미국은 중국보다 훨씬 크며, 위안은 기축통화가 되기에는 결제통화로써 비중도 작고, 페트로달러처럼 가치 보증도 잘 안되며 무엇보다도 다른 국가들이 가치저장 수단으로써 안심하고 보관할 수 있는 신뢰도가 너무 낮다. 하지만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다. 변화의 조짐에 관심을 가지고 미리 대응하지 않으면 점점 뜨거워지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가 될지도 모른다. 남은 미국의 4년에 귀추가 특히나 주목된다.
참고문헌
논문
황태희 외 2인, 「미국 경제제재 분석 : 효과성과 특수성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2017
신문기사 및 보도자료
김민욱, “중국 "14일부터 대미 추가관세율 125→10%"”, mbc, 2025.05.14.
김원철, “트럼프, 한국 등 상호관세 90일 유예…중국은 125%로 인상”, 한겨레, 2025.04.10.
김은중, “트럼프 추진 7000조원대 감세 계획안, 美하원 통과”, 조선일보, 2025.04.11.
박신영, “美증시, '1경' 사라져 '패닉'인데…트럼프 한마디에 '화들짝'”, 한국경제, 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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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및 도표
Federal Reserve Bank of ST.Lou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