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낭만고양이
기상, 수업 듣기, 과제 하기, 밥 먹기, 수업 듣기, 아르바이트, 과제 하기, 시험공부 하기… 반복되는 일상 속,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할 일이 산더미일 때 다들 한번씩은 회의감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대학 가면 이제 노는 일만 남은 줄 알았던', 혹은 '대학 가면 앞으로 인생은 모두 다 잘 풀릴 것만 같았던' 당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 속에서 걱정이 늘어간다. 캠퍼스를 누비며 누릴 수 있는 대학생의 낭만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말 일시적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성인으로서 사회에 나가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기가 오면, 고등학생 때의 자신이 생각했던 ' 대학생 낭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실 이렇게 낭만이 사라지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에 1년간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은 덕에 산타할아버지가 주셨던 선물의 비밀을 깨닫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말고사 시험기간이 끝나지 않아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꼼짝없이 독서실에 가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솔크'이기에 크리스마스에 괜히 옆구리가 시리기 시작했던 나의 최근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연말이 되었을 때 설레기보다 또 이렇게 나이를 한 살 먹는다는 사실이 왜인지 모르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역시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며 크리스마스가 주던 설렘과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깨져야 하는 낭만들은 남아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고, 함께 예쁘게 늙어가고 싶은 낭만적인 꿈이 있었다가도, 현실을 마주하면 사랑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경제적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 혹은, 막상 결혼을 해보니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가정을 이루고 일상을 함께하는 일은 불화와 갈등을 동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또는, 누구보다 멋지게 나의 커리어를 쌓아가겠다는 낭만을 가지고 꿈꾸던 직장에 입사한 후, 열정은 사라진 채 매일매일 '출근하기 싫다'와 '퇴근하고 싶다'로 가득한 피폐한 일상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낭만들이 하나하나 깨져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많은 현실들을 마주하고,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우리 모두가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인 것이다. 내가 꿈꾸던 낭만적인 미래가 사실은 그렇지 못할 때, 이를 극복해 나가며 우리는 한 층 더 내적으로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한 가지 시련을 겪고 나면,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와 내가 꿈꾸던 낭만을 파괴하더라도 그에 맞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낭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내가 지금은 못하지만 언젠가 하고 싶은 일들', '내가 과거에 꿈꾸었던 것' 내지는 '잊고 싶지 않은 과거의 추억',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을 많이 이야기 한다. 즉, 사전적 의미와는 별개로 '인생 속의' 낭만은 행복했던 추억이나 하고싶은 일, 꿈 등으로 인식된다. 어른들이 '나도 젊을 적엔 낭만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사실 앞서서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낭만을 하나씩 포기하거나,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포기 당하며 살아오기에, '낭만'이라는 것이 현재의 내 삶과는 동떨어진 개념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는 행복과 낭만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진 현대 사회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SNS에 '낭만'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좋은 경치를 가진 장소로의 여행, 일상에서 벗어나 즐기는 맛있는 식사와 관련된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여행을 떠나거나 고급스러운 식사를 즐길 여유가 없다면 '낭만'을 즐길 수 없는 삶인 것일까?
사실, 낭만이라는 것도 자신이 정의하기 나름일 수 있다. 과거의 넘치도록 행복했던 추억, 시간과 돈을 들여서 떠나야 하는 여행, 언젠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만이 '낭만' 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며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이 지키고 싶던, 혹은 꿈꾸던 낭만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낭만은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하루 동안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마무리한 뒤 혼자 밤하늘을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이, 누군가에겐 알람 소리 없이 자신이 원할 때 일어나서 마주하는 주말 아침 햇살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열심히 운동한 뒤에 씻고 나와서 느끼는 시원한 공기가 '낭만적'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꼭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자신이 그 안에서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면 그것 또한 '낭만'이다. 미래에 돈을 많이 벌어서 유럽여행을 떠나 유람선을 타고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고 싶다는 꿈도 낭만적이지만,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날 밤에 우연히 본 예쁜 보름달도 너무나 낭만적이다.
할 일도, 고민도, 걱정도 많은 일상 속에서, '낭만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혹은 '낭만을 즐기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낭만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자신만의 낭만을 찾고, 잠시나마 기분 좋은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더 활기찬 일상이 되지 않을까? '소확행'이 유행하는 오늘날, 소소한 행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삶 속에서 낭만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낭만세포들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가?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낭만세포들이 멸종하지 않도록, 자신만의 낭만을 찾고 그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