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검정색 볼펜
모두 지금 영화 한 편을 떠올려보세요. 어떤 영화가 떠오르나요? 저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같은 영화를 떠올립니다. 바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영화입니다. 이영화를 보셨던 분들이라면 고등학생 시절의 풋풋한 첫사랑과 우정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제가 항상 이 영화를 떠오르는 이유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시절이 저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였으며, 가장 낭만적이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직전, 학교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 영화 한 편을 보여주셨으니, 그 영화가 바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였습니다. 한창 첫사랑에 대한 고민에 빠질 나이였기에 그 영화가 저희에게 주는 여운은 컸습니다. 여운이 남아서인지 그날 새벽까지 저희들은 독서실 옥상에서 서로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시절 여름의 밤은 유독 짧았습니다. 저희는 매일 밤마다 독서실 옥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저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어떤 때는 친구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하여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가끔은 개학 후에 학교 생활을, 가끔은 서로의 연애담을, 그리고 가끔은 저희들의 먼 미래를 점치며 소중했던 한여름의 밤을 하루하루 채워 나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끝나고, 또 시간이 흘러 저희는 모두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겨울에, 저희는 우연한 기회에 다 같이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숙소에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중에 친구들을 보니, 몇 년 전의 한여름 밤이 떠올랐습니다. 모두 얼굴에 그 시절의 어렸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함께 있을 때의 그 천진난만함은 여전히 똑같았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현실에 치이고 지칠 때마다 그 시절의 천진난만함은 사라지고 얼굴의 낯빛만 어두워지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 추억을 회상하다 보면 저희 모두 그 시절의 모습을 가슴 한 켠에 남겨두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비록 그 시절 여름처럼 먼 미래를 점치며 희망을 외치지는 않지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과거의 추억들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저와 친구들이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추억할 수 있는 과거이자 낭만이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 밤은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될 오늘과 내일을 보내게 해주는 친구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하며 잠에 드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