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735A
"넌 낭만이 무슨 뜻인지 알아?"
나는 마른 입술을 다시며 네게 물었다.
"모르겠어."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저 멀리 백사장과 그 너머의 바다가 햇살에 반짝였다.
물론, 아직도 네 시선은 무슨 말이 적혀있는지도 모를 책 속이었다.
"물결 랑(浪)에 흩어질 만(漫), 흩어지는 물결이라는 뜻이야."
너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뜬금없다는 듯 미간을 살며시 찡그렸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네 주의를 끈 것만으로도 기뻤다.
"낭만은 백사장의 파도 같은 거래. 아름답지 않아? 둘 다 손에 잡힐 듯 사라지는 게 어울리기도 하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돌아오는 너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은근한 오기가 올라왔다.
"저기 봐, 파도는 아름답지만 한순간이잖아."
고운 모래밭 위로 흰 파동이 수놓아지다 이내 사라진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아름다운 시절은 한순간이라고. 순간을 즐겨야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너를 흘겼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자, 결국 수평선 위로 고개를 돌렸다. '넌 이 나이에 낭만도 없어?'라는 핀잔도 덧붙였다. 이건 마음에 없는 소리였는데. 괜히 마음 한쪽 편이 켕겼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러는 동안에도 너의 시선은 온통 바다였다.
그렇게 침묵과 파도 소리가 어색하게 뒤엉켜 갈 무렵, 네가 운을 뗐다.
"난 파도보단 바다가 좋은걸."
"그건 평생도 볼 수 있어."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했다. 난 바다가 낭만적이라는 널 이해할 수 없었다. 괜히 심술이 났다.
"바다는 약속한 것처럼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잖아. 난 그런 게 좋아."
넌 내게 고개를 돌렸다. 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럼 그냥 집에나 있지, 낭만적이겠네."
난 네 눈빛을 피하며 말했다. 이건 마음에 있는 소리였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내 말을 듣고 이내 말끝을 흐린 넌, 턱을 괴고 파란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넌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네 곁이 좋아."
차분한 목소리였다.
넌 바다를 등지고 내게 몸을 돌렸다. 우린 두 눈을 마주했다.
묘한 침묵이 흘렀다.
"나의 바다가 되어줘서 고마워."
네 한 마디에 입가에 웃음이 일었다. 너는 몰랐으면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넌 진짜 나랑 안 맞아."
조용히 네 품으로 다가갔다. 네 어깨 뒤로 하늘과 맞닿은 푸른 바다가 보였다. 이제는 그때의 풍경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네 목덜미에서 물결처럼 흩어지던 짙은 사향만은 아직 선명하다. 이따금씩 그때로 돌아가 '평생 너의 바다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꿈을 꾼다. 아마 결국엔 나도 너뿐만 아니라 너와 함께할 시간까지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