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죽음을 생각하는, 사상록(死想綠)#12

by 끼미


어제 저녁, <세바시> 월간 강연회를 방청하러 갔다.

첫 번째 강연자로 등장하신 온라인 독서클럽 '그믐'의 김새섬 대표님.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나오신 대표님께서는 약간 긴장된 표정과 목소리로

본인이 현재 교모세포종이라는 악성 뇌종양을 앓고 있음을 밝히며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


"내년 여름까지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지금이 여름이니 이 말인즉, 일 년 뒤에 죽는다는 얘기였다.

누가? 내가.


처음 듣는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 년 넘게 진로 고민과 자아 탐색을 하면서 나에게 묻고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물을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그리고 세계 여행 다니기.


그런데 어제는 좀 이상했다.

자동으로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내 안의 무언가가 꽉 붙잡았다.

입 밖으로 꺼내긴커녕 마음속에서조차 중얼대지 못했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손가락으로 막고 있는 수도꼭지 속의 물이라도 된 듯 답답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이건 당연하다.

세계 여행. 이것도 여전히 하고 싶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으니까.


하지만,

이게 전부인가?

정말 세계 여행만 하고 나면, 빙하를 보고 사막을 가고 나면,

그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까? 좋은 인생이었다 웃으며 떠날 수 있을까?


분명히 뭔가 더 있다.

일 년 뒤에 죽는다면, 정말 그렇다면, 하고 싶은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세계 여행...?' 하며 흐려지는 말꼬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내년 여름까지 딱 일 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너는 뭘 하고 싶니?"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뤘던,

안 하면 눈 감을 때 후회할 것 같은,

나의 세 번째 소망이 뭘까?


서른 네 살 어른이에게 여름 방학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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