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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미 Sep 12. 2024

대만 워홀 브이로거,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만 워홀 생활기 시즌1#15

누구나 한 번쯤 유튜버가 되기를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대만 워홀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유튜버 데뷔였다. 이른바 ‘대만 워홀 브이로거’. 하늘길이 막혀버린 코로나 시국에 대만이라니, 그것도 3박 4일 여행이 아닌 무려 1년짜리 워홀! 중국어 못 하는 애가 알바하는 모습, 대만 친구들이랑 찐 현지인 맛집 다니는 모습... 이미 최소 구독자 백만 명은 확정이었다.


그래서 대만으로 떠나기 직전 아이폰을 샀다. 액션캠을 사자니 인생 어찌 될지 모르니 선뜻 투자하기가 그랬고, 대신 걸으면서 찍어도 화면 떨림이 덜 하다는 아이폰을 구입했다. 찾아 보니 아이폰으로만 영상을 찍어 올리는 ‘브이로거’들도 많았다. 때마침 쓰던 휴대폰 약정도 끝났던 참이라 지체 없이 당시 가장 최신 기종이었던 아이폰 12를 주문했다. 곱디 고운 이 보라색 아이폰이 밀크티 한 잔이라도 사 마실 돈을 벌어다 주길 바라며.          



하지만 조금은 예상했던 대로 야심찬 백만 유튜버 도전은 ‘도전’으로 끝났다. 한 달 동안 8편의 동영상을 올렸고 45명이라는 구독자가 생겼지만 거기에서 끝났다. 구독자가 450명이 될 때까지 더 할 수도 있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영상이 아닌 일상을 살고 싶었다


나의 브이로그는 대만에 입국하던 날부터 시작했다. 동대구역에서 엄마와의 눈물 나는 작별 인사를 마치고 혼자가 된 그 시점부터 손에 폰을 들고 모든 순간을 기록했다. 대만 공항에 도착해서 유심 사는 모습, 자가격리 호텔 방 안에서 대만 컵라면 먹는 모습, 쉐하에서 하메들과 같이 저녁 먹는 모습, 혼자 동네 돌아다니는 모습...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이 시간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부지런히 카메라를 켰다.


그게 문제였다. 모든 순간을 영상으로 찍으려다 보니 일상을 오롯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었다. 신기한 걸 보면 내 두 눈 대신 카메라부터 들이대기 바빴고, 단수이의 노을을 눈앞에 두고도 삼각대에 휴대폰을 끼워 세팅하느라 정신없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영상이 잘 찍히고 있나 수시로 들여다보고 혹여 내 얼굴이 찍히는 건 아닌지, 나의 몸짓과 손짓이 어색하진 않은지 의식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나중, 카메라’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영상 찍기를 그만두었다. 영상 속이 아닌 지금 내 눈 앞의 일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브이로그에 올렸던 모습들



편집’ 대신 산책을 하고 싶었다


사실 영상 촬영보다 가장 큰 문제는 ‘편집’이었다. 카메라로 찍는 거야 원래 하던 일상에 조금의 수고와 시간, 의식을 더 들이면 되는 일이지만 편집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시간을 부러 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만 구독자를 끌어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중알못 주제에 중국어 자막까지 달았었다. 한국어 자막만 해도 어려운데 못 하는 중국어 자막이라니!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었다. 게다가 완벽주의자의 기질까지 있어 고작 8분짜리 영상을 편집하는 데 최소 3시간은 걸렸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어차피 날도 덥고 코로나 조치로 어디 놀러가기도 쉽지 않아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자막을 달던 어느 날 불현듯 ‘내가 지금 방구석에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브이로그를 올리고 싶었던 이유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소중한 순간’을 방 안에서 휴대폰만 붙잡은 채 흘려보내고 있다니 그야말로 모순이었다.


아무리 밖이 더워도, 아무리 만날 사람이 없고 갈 곳이 없어도, 혼자라도 대만을 즐겨야 했다. 천만 유튜버를 꿈꾸며 방구석에 틀여 박혀 있을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한 번 더 하면서 ‘지금, 대만’을 느껴야 했다. 내가 대만에 온 건 죽기 전 마지막 1년을 대만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지 유튜버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천만 유튜버는 되지 못했지만 브이로거 도전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때 도전해보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나도 유튜브 해볼까?’ 하고 말만 하는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막연히 꿈만 꾸는 게 아니라 “진짜 시도해봤다”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었다. 나의 실천력과 행동력을 스스로 칭찬해 줄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당시 유튜브로부터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45명이라는 많지 않은 구독자 수였지만 내 브이로그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남겨준 분들이 있었다. 특히 대만 사람들이 남겨준 응원 댓글은 길어지는 코로나 시국에 지쳐 가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대만에 온 걸 환영한다”, “코로나 조심하고 건강 잘 챙겨라”, “더울 때는 잘 먹어야 한다” 라던 중국어 댓글들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친절한 대만 사람들’ 이미지의 커다랗고 빛나는 조각이 되어 주었다.


대만 사람들이 남겨준 응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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