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봄 채비를 할 때다. 뭐 하기야 로스앤젤레스에 무슨 겨울이 있어서 봄 채비라고 할 것이 있겠는가. 지난 1월1일에는 온도가 자그마치 83도였다. 교회가면서 얇은 여름옷을 입고 갔으니. 그 무렵 한국은 50년 만에 오는 추위와 폭설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한국과 너무 다른 계절을 살고 있으면서 계절 맞을 준비는 좀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3월을 바라보니 봄이라는 말을 떠올려보게 되고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겨우내 나를 따뜻하게 감싸준 것들, 나의 묵은 때를 깨끗이 털어내야겠다.
이불을 잔뜩 꺼내놓았다. 세탁장으로 갈 것들이다. 주로 빨래는 집에서 한다. 개인 세탁기가 없어서 아파트에서 함께 쓰는 공용세탁기를 쓰기가 영 개운하지가 않아서이다. 처음에 보니 어떤 이들은 공동세탁기에서 운동화를 빨고 드라이하는 것을 보고는 깨끗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 다음부터 가능한 집에서 손빨래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이불은 내 손으로 빨 수가 없으니 세탁장에 가야한다. 아파트 세탁장이 아닌 전용 세탁장으로 가려면 이불을 비롯해 준비할 것이 여간 많지 않다. 차에 싣고 세탁장에 도착하여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는데 한 멕시코 할아버지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안뇽하셔요?” 어떻게 배웠을까? 한국 친구가 있는 것일까? 제법 발음이 괜찮았다.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이불빨래를 해야 하니 작은 세탁통은 아예 쳐다보지 않고 큰 세탁통을 찾았다. 세탁이 되는 동안 준비해 간 책을 읽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정신 줄을 놓고 있는데“안뇽하셔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서 모두 멕시코 사람들이었고 한국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무슨 소린가하여 고개를 들고 보니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빨래가 다 되었다고 불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건조 통을 찾았다. 한통에 빤 빨래들이지만 건조시킬 때는 나누어서 해야 더 빠르고 경제적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큰 건조 통이 하나뿐이었다. 할 수 없이 반만 넣고 나머지는 그 바로 옆에 할아버지가 건조시키는 통을 기다려야 했다. 5분만 있으면 끝난다고 시간을 알려주는 통 곁에 내 빨래들을 준비시켜놓고 다시 의자로 돌아와 책을 읽고 있었다. 조금 후에 또 큰 소리로 “안뇽하셔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나를 부르는 할아버지 소리였다, 자기 빨래 건조가 다 끝났으니 내 빨래를 넣으라는 말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빨래를 통에 넣었다. 그 후에서야 할아버지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할아버지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하이얀 빨래를 한올 한올 가만히 접고 있는 할아버지의 등에서 세월을 읽었다. 연륜이 쌓인 대화법이었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언어의 소통 법을 남다르게 배워 나갔나 보다. 나의 짧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쳐다보는 할아버지였다. 어디선가 배워온 단 한마디 한국말로 나와 모든 대화를 나누려했다. 인사도 “안뇽하셔요?”이고 부를 때도 “안뇽하셔요?”이다. 참 간단한 대화법이 아닌가. 긴 세월에 확실하게 익힌 것은, 많이 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일 게다. 단 한마디를 해도 진심어린 표현이 진정한 대화를 이끈 다고 생각했나보다.
내가 이 긴 기간을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배우려 얼마나 애썼는가. 나이 들어 시작한 영어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어려워져갔다. 발음도 안 되고, 문법도 이해하기 어렵고, 들리는 것은 또 왜 그렇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힘들게 영어를 배워나간다. 그러던 나는 오늘 참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대화란 마음으로 하는 것. 순수한 얼굴표정과 진심어린 마음이 곧 대화이다. 많은 단어를 안다고 하여 모든 이들과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고상하고 수준 높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다 소통 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뒤로 숨기고, 가식의 웃음으로 나누는 대화가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다. 단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실을 말 할 수 있고,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대화이다. 진실, 거짓 없는 얼굴, 그것이 온전한 대화이다.
빨래를 다 정리한 할아버지는 떠나며 나에게 깍듯한 인사를 건넸다. “안뇽하셔요?” 내 얼굴에도 활짝 웃음을 피우며 인사했다. “바이”
앞으로도 그 할아버지는 한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한마디로 모든 언어의 소통을 이어갈 것이다. 만날 때 인사도, 헤어질 때 인사도, 사람을 부를 때를 비롯해 무언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요구할 때도. 일단 “안뇽하셔요?”라고 불러놓고 그 다음 손과 발로, 그리고 그 온화한 표정으로 대화해 나가겠지. 할아버지 자신이 만든 참 아름다운 대화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