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풀숲에서 활짝 핀 불꽃, 꽃무릇을 발견했다. 특이하게 잎이 없는 식물이다.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 없어 짝사랑, 슬픈 추억,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언제 이렇게 피었을까. 붉은 꽃잎 하나하나 촛불 켠 듯 정성스레 피어올랐다. 저무는 초록 물결 속에서 꼿꼿이 고개 들고 서있다. 스러지지 않으려 안간힘 쓰며 버티고 있다. 가을같이 스쳐지나려다 아낌없이 바라본다. 가을 한가운데 서서 꽃의 이별 의식을 바라본다. 끝까지 타오르다 마지막 한 방울마저 불사르고 제 마음까지 불태우고서야 비로소 스러지는 모습을.
상실은 슬프지만, 때로 그것은 새로운 만남과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완벽한 보호처였던 어머니였던 자궁과 젖가슴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독립된 개체로서의 내가 될 수 있고, 세상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만나게 되며, 시의 한 구절처럼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이 될 수 있다. <김혜남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마지막을 어찌 알고 준비했을까
어리석은 인간은 끝을 몰랐다
눈이 멀어 현실을 망각했다
끝을 알고 이별을 준비하며
마지막을 꽃피우는 꽃무릇
붉은 꽃잎 불꽃처럼 일렁이며
아름다운 끝을 준비한다
뜨거웠던 여름아 안녕
달콤했던 날들아 안녕
눈 녹듯 사라질 시간
기어코 식어갈 심장에
뜨겁던 계절을 묻는다
슬픔공부 한 줄 요약
이별은,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선이다. 상실과 폐허 위에 집을 지은 그대여,슬픔은 허물고 시작이란 집을 짓자. 가슴 드리운 고운 초록잎에 그대 입 맞출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