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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02. 2024

잘한 이별

메꽃

꽃 필 줄 몰랐습니다

꽃 핀 줄 몰랐습니다

홀로 핀 꽃이었으니까요


뜨겁던 여름, 가을 사이

홀로 피어도 외롭지 않던

보랏빛 설렘

반으로 곱게 접니다


행여 다시 피어오를까

한 방울마저 꽃피웁니다


꽃은 피고 지고

피고 지는데


왜 우냐며

가을바람

스치듯 묻습니다


피라고 재촉한 적 없는데

스러져라 등을 떠밉니다


여름은 저만치

등 돌리며 멀어져 갑니다

뒷모습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듭니다


필 때와 질 때를

아는 나이니까요


그저 한 송이 꽃이라

달려갈 수 없습니다


가냘픈 뿌리가

보드란 잎사귀가

손을 붙잡습니다


뛰어갈 다리 없어

안아줄 팔이 없어


애꿎은 그리움만

썼다 지웠다 반복합니다


그대 얼굴 그리면

무심한 바람이 지우고


그대 모습 떠올리면

차가운 비에 씻깁니다


못다 핀 꽃잎 위

못다 한 마음만

토독 떨어집니다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이른 아침 산책길, 모자와 마스크로 똘똘 무장한 채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이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다. '투명인간 모드' 완전실패다. 아무리 감싸고 숨겨도 모태 아름다움은(?) 감춰지지 않나 보다. 흠흠. 걷다 보니 여기저기 피어난 들꽃이 시선을 끌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크고 화려한 꽃을 좋아했다. 요즘은 풀숲, 돌틈사이 무심한 듯 피어난 들꽃에 마음이 간다. 다가 꽃만 보이면 멈춰 섰다. 예상했던 산책시간 훌쩍 넘버렸다.

한철 피다 스러질 작은 꽃 여름 끝자락 붙들고  안간힘고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시인의 노랫말처럼 이젠 가야 할 때다. 수십 번 수백 번 수만 번 이별을 고해도 아프고 아려올 이별이지만 이젠 뒤돌아선다. 뜨겁던 여름이여 안녕.

무기력하게, 꺾인 갈대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벽이 된 나의 몸과 마음을 두드리자. 그래서 얼음을 깨듯 나를 깨트리자. 눈보라 가듯 움직여가자. 삶이 무지근한 잠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그 속에 생화(生花)처럼 놓여 있다면 말은 달라진다. 알프레드 드 뮈세는 "삶은 꿈, 사랑은 그 꿈"이라고 노래했으니 말이다.
<문태준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슬픔공부 한 줄 요약

슬픔마저 낙엽같이 뒹구는 계절, 시월이다.  뜰 안을, 마음 안을 비질할 시간이다. 매 순간, 매일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채색하자.


모든 인연이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았으면. 모든 인연이 풍경을 뎅그렁, 뎅그렁, 흔들고 가는 한 줄기 맑은 바람 같았으면.  

<문태준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메꽃 #여름 안녕 #잘한 이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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