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Sep 28. 2024

안경을 쓰지 못하는 이유

나는 왜 필라테스가 슬픈가

여물지 못한 내가

여리고 고운 너를 키운다


햇살 한 줌 담지 못한 내가

가을 햇살 같은 너를 담는다


세상살 빛바랜 내가

하늘빛 고운 널 기른다


마음하나 비추지 못한

불투명한 내가

맑은 시 앞에 펜을 잡는다


내 눈물 하나 닦지 못하면서

내 아픔 하나 간수 못하면서


네 눈물 닦아준다

네 상처 보듬는다

유난을 떤다


세상은 이토록 빛나는데

하늘은 이토록 눈부신데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이기심, 욕심으로 얼룩진 

마음


말갛게 까봐

나는 오늘도

안경을 쓰지 못한다




오늘의 슬픔 사용설명서

-나는 왜 필라테스가 슬픈가

선선해진 날씨 탓일까. 아침이 밝아도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그동안 여름 열기에 쌓인 피로가 만만치 않았나 보다.

시계 알람으로 겨우 눈 뜬 아침,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이토록 작은 그릇을 가진 내가, 사랑하는 마음 하나 살뜰히 담지 못하 내가 따뜻한 진심을 받아도 까. 부끄러웠다. 잠이 덜 깬 상태임에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고운 사람 앞에서, 맑은 시 앞에서 당당히 설 자격이 되는지.  따뜻함을, 말간 마음을 덥석 받아도 되는 .

나는 누군가에게 온기진심을 나눠준 적 있던가. 부끄러워서 하늘도 햇살도 바라보기 힘든 아침이 밝았다.


필라테스 수업시간, 짐볼에 앉아 운동하다 또다시 눈물샘이 터졌다. 운동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가을이라 그런가. 아니면 늙어가는(?) 성장통인가.

"짐볼 위 동그란 원의 면적을 충분히 활용해서 움직이세요. 자꾸 흔들리고 균형을 잡지 못하는 건, 중심을 잡지 못해서입니다. 불안정하지 않게 중심을 잡으세요. 그래야 흔들리지 않아요."

가을바람에도 일렁이는 마음, 필라테스 강사 한마디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필라테스 동작이 힘들어서 인가. 자꾸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짐 볼  흔들리는 모습이 위태로운 내면과 겹쳐진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제 세상 만난 양 뜨거워졌다.

가을은 툭하면 사람을 울리는구나.

떨어지는 잎사귀에도 는 바람 한줄기에도 흔들거린다. 이젠 필라테스마저 슬프다니. 붉어진 내 눈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강사님.(죄송합니다, 강사님 누가 눈물샘 좀 잠가주세요, 힝)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방황하고 또 한 번 좌절하며 중심을 잡아간다. 늘도 실과 꿈 사이, 사람과 삶 사이 균형을 간신히 잡아간다.




슬픔 공부 한 줄 요약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주저앉아 한탄만 한다면 우리는 그 대가로 소중한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상처를 입고 무너져 버리는 것도 나 자신이고, 그것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혜남 '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무엇에 닿든, 어디든 아름다운 가을이 밝았다.

어설픈 이 그곳에도 닿기를.

당신에게도 밝은 가을이 기를.


이전 07화 나는 여름이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