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복이었을까, 화였을까

[Muzi-Series] EP.05 나는 그대로인 줄 알았다

by 마리엘 로즈

아이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고,

숨도 조금 가빠 보였다.

나는 순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설마하면서도 가방을 받아주며
“다 밀려썼어?괜찮아. 어차피 기대도 안했잖아.”
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넸다.
그런데 아이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게 아니라 오늘 성적 발표가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어.
‘우리 반에서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애가
어떻게 한 명밖에 없냐’고 실망스럽다고”

나는 곧바로 한 아이를 떠올렸다.
"아, ㅇㅇ이가 또 1등 했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


중학교 때부터 전교 1등.

워낙 뛰어난 아이로 소문난 친구였으니까.

그걸 보고 또 기가 죽었겠구나 싶었다.

하필이면 같은 학교, 그것도 같은 반이라니.

그런 우연도 참.


그런데,

그다음 말이 문제였다.


“아니야. 내 이름을 부르셨어.”


그 순간,

나는 정말, 처음으로

아이 앞에서 놀라움과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 진짜? 니 이름을?”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갔다.



웬만하면

성적에 대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는데

그날만큼은 달랐다.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성격 급한 나와는 다르게

매일 느리다고 타박만 했었는데...
그 안에서 아이가 얼마나 묵묵히,
그리고 깊이 있게 쌓아왔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내내
단 하루도 대충 넘기지 않고,
자기 속도로, 자기 방식으로
조금씩 깊어져온 시간들이었다.

이번 결과는 마치
아이에게 조용히 전해진 작은 응원 같았다.



“야!! 그건 진짜 복이다.

잘하는 애가 엄마 말까지 잘 들어주는

경우가 어딨냐.”


과연, 그럴까.


뜻하지 않게 찾아온 선물은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 ‘1등’이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복이었을까,

아니면 화였을까.




신이 난 우리는

처음 맞는 고등학교 중간고사에

더 열심히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순공? 그건 기본.

복습, 기출, 자투리 시간까지 총동원해서

나름대로는 모든 걸 챙겼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공부만큼은.


“근데,

내가 아이랑 공부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뭔지 알아?”


“뭔데?”


“아이 뒤에 서 있었던 거야.”


단지 뒤에 선 게 아니었다.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이걸 다 못 끝냈다고?”

“시간 없는데 뭐 하고 있었어?”

“이거밖에 못 했으면,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래?”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루 진도를 놓치면 무너지는 줄 알았고,

그게 곧 실패라고 여겼다.



와... 너 거의 드라마에 나오는 극성 엄마였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나는 그걸

‘애를 위한 것’이라고 착각했지.”


“근데 다들 그 정도는 하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겪어보기 전엔 몰라.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어.

나만 진짜 ‘아이를 위한 엄마’인 줄 알았어.

그때는 나도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으로

변했는지 몰랐거든.


“근데 진짜. 왜 그렇게까지 했던 거야?”


“글쎄, 1등이 목표는 아니었어.

진심으로 그건 아니었어.”


“그럼 뭐였는데?”


“기죽이기 싫었던 거야.

내 아이가 어디 가서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했어.

정확히 말하면,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 바랐던 건데 말이지.”


“근데 그 과정이 오히려 자신감을 뺏은 거였네.”


“...그렇지.”



중간고사 전날까지

아직 영어 공부를 다 끝내지 못한 아이에게

나는 열 번도 넘게 물었다.


“다 했어?”

“얼마나 남았어?”

“진도는 끝냈어?”


불안했던 건 나였다.

아이는?


나 같아도 당연히 더 불안하고 짜증났겠다.”


그치?근데,

화 한번을 안 냈어.

너무 무서워서 말조차 꺼내지 못했겠지.

갑자기 몰려든 주위의 관심도 버거웠을 텐데

혹시 그동안 믿고 의지한 엄마까지 외면할까 봐,

그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


나는 왜 몰랐을까.

무거운 어깨와 떨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그 조용한 울음을.



돌이켜보면

처음의 나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담담했다.

아이가 불안해할 때마다

“너는 할 수 있어. 걱정 마.”

그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사실은,

그 말은 아이보다 나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그래야 달릴 수 있었으니까.



“근데 모의고사에서 1등 하고 나서부터...”


우습지. 우리가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


갖게 되니까

잃을 게 많아졌고,

잃기 싫으니까 불안해졌고,

불안하니까 다그치게 되더라.


‘왜 이거밖에 못 했어.’

‘이걸 다 언제 해.’

‘그러게, 플랜대로 했으면 지금 이렇게 안 힘들었잖아.’


초조한 마음이

말투까지 날카롭게 만들었지.



“야! 그건 거의 윽박 수준인데?”


그치.

나도 나중에서야 알았어.

이건, 내 불안이 만든 소리였다는 걸.”


정작 전쟁터에 나가는 건 아이였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 가장 무서운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너 그러다 죽어.’



“근데 너 워낙 애들한테 잘하기로 소문났잖아.

애들 말 잘 들어주고, 뭐 하나 혼내는 법도 없고.

보통 엄마들이랑 좀 달랐지.”


“그러니까, 나도 그걸 믿고 있었나봐.
은근 자부심이기도 했고.
근데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변하더라.


문제는 당사자는 그걸 잘 모른다는 거야.
‘나는 안 바뀔 거야’라는 착각이
제일 무서운 거였어.”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야.



그땐 정말,

무조건 앉혀놓고

쉬지도 못하게 했지.


칭찬은커녕

쉬는 걸 ‘시간 낭비’라고 여겼으니까.


근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필요한 건 그게 아니었더라.


인정. 휴식. 그리고 격려.


그걸 몰랐던 나는

아이를 집에 앉혀두고도

아이가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게 만들었어.



그 수많은 시험을 지나

나는 하나를 단단히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진짜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그날의 1등.


그건 정말 복이었을까.

아니면 화였을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그 답은 숫자가 아니라,

그날 놓쳤던 마음 안에 있었다는 걸.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디면

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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