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짧고 긴 순간

빛결로 빚은 문장 3부 | EP.04

by 마리엘 로즈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어요


무심코 발을 내디뎠다가,

그만 멈춰섰어요.



그가-

거기 있었거든요



아무 말 없이,

등을 벽에 기대 선 채.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인사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심장이 턱-

하고 내려앉았어요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마치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그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문이 닫히는 순간,



그의 공간을

침범한 건 아닐까-
괜한 불안이 밀려왔어요




그 옆에 서 있는 내내,


등이 자꾸 굽고,

어깨는 안으로

말려 들어갔어요


손끝은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고,
가슴은 조용히,

아주 천천히 식어갔어요



괜히 들어왔나
괜히 말 걸었나
괜히 기대했구나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표정조차...없었어요



나는 애써

표정을 지웠고
그와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계산했어요


숨소리가 그에게 닿을까

조심하면서도,



혹시

그가 고개를 돌릴까봐
자꾸만 눈치를 보게 됐어요



그냥-
나를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으면...




하지만,
그 공간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요


정적만 가득했어요

그 정적이,
차라리 소음처럼 느껴졌어요


뭔가가 계속 울리고 있는데,
들리지 않는 소리처럼.




문이 열리고,
그가 나보다 먼저 내렸어요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멈춰 서 있었어요



무릎이 떨리고,
목덜미가 화끈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울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몇 초의 시간이...
그 어떤

긴 밤보다도
더 길고, 더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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