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결로 빚은 문장 3부 | EP.02
손에 들린
작은 쇼핑백이
팔에 닿을 만큼
가볍게 흔들렸다
그 안엔
고이 접힌 목도리.
몇 번을 접어도 부족했던 말들처럼,
조심스레 넣어두었다
걸음을 멈춘 건
익숙한 웃음소리 때문이었다
본능처럼
고개를 들었다
거기,
골목 끝에서
그녀가
다른 남자의 팔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람처럼
안겨 있었다
숨이 멎었다.
눈동자는 그대로 굳고,
깜박이지도 못했다
한순간-
온몸이
허공에 떠 있었다
발밑의 바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낯설었고,
가슴께는 얼어붙었다.
코끝 어딘가가
서늘하게 저며왔다
다리 한쪽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몸은
미세하게
기울어졌다
되돌리려
어깨를 세우는 순간-
손에 들린 쇼핑백이
바스락,
작은 소리를 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단 한 번,
오직 나에게만 보여주었던
바로 그 표정.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부서졌다
입매는
천천히 일직선으로 굳어가고,
눈썹은
조용히 찌푸려졌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감각이
양 볼을 따라
고요히 흘러내렸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도
두 걸음쯤은 더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었다
바람이
머리칼을 흩뜨렸고,
손끝은
쇼핑백을 내려놓듯
조용히 힘을 뺐다
팔은
매달린 것처럼
축 늘어지고,
그림자는
천천히
몸을 넘어
뒤편으로 기울어졌다
그녀가 웃고 있던 자리에
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 안에서
천천히,
나라는 감정이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