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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퇴 사유는 당일 취소입니다.

독서 모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인 것을

by 윤영

독서 모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모임을 운영하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었지만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다. 바로 모임의 규칙을 통해서다. 틀에 박힌 것, 통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시작할 때부터 많은 것을 정하지 않았지만, 자유도 예의를 지키는 사람들 속에서 빛이 나는 것이었다. 인간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쓸데없이 그것을 소비하지 않도록 모임을 운영할 때 효과적인 규칙들을 공유한다.


1. 가입 후 자기소개

개인 정보 노출이 싫어서 자기소개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소개란에 나이나 직업을 적는 대신 거주지와 좋아하는 책, 그리고 문구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거주지는 어떤 지역까지 이 모임이 확장성을 가지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고 좋아하는 문구와 책을 적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기소개에 남긴 문구와 책 소개에서 다음 모임에 선정할 책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소개는 가입 후 24시간 이내에 하도록 명시했다. 가입 동시에 안내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이를 잘 지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귓속말 기능을 통해서 한 번 더 이야기한다. 그 이후에도 소개를 남기지 않으면 공지한 대로 강퇴 처리를 한다. 이는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참석의지를 파악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다.


2. 참석 취소는 최소한 정모 날짜 일주일 전에 해주세요.

책을 읽고 참석해야 하는 독서 모임의 특성상, 모임 날짜가 임박하면 공석이 발생해도 참석을 하기가 어렵다. 부득이하게 취소를 해야 할 경우라면, 모임 일주일 전에 취소를 해달라고 공지한다. 그것을 공지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모임 규칙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3. 당일 취소는 강제퇴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일에 참석 취소를 한다. 아파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책을 다 못 읽어서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사이라면 어쩐지 더 쉽게 하는 것 같다. 참석을 취소하는 것은 (참석을 원했던)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강퇴시키는 일은 아무리 겪어도 쉽지 않다. 타인을 아프게 하면 나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퇴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몇 번은 입술을 깨물고 이것이 바른 일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유를 알려주고 스스로 탈퇴할 때까지 기다릴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은데 이번만 넘어갈까?'


이 고민을 하는 시간 동안 나의 에너지는 소비된다. 해서 지금은 강퇴 버튼을 누르기 전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공지사항에 규칙을 분명하게 기재하고, 반복될 때마다 글을 올려서 사람들에게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난 글은 읽지 않는다. 공지사항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규칙에 관한 글을 주기적으로(너무 자주는 피곤함을 유발하기에 1년에 1-2번) 올리는 것은 운영자의 몫이다. 강퇴 버튼을 누를 때는 규칙만 생각하고 되도록 한 스푼의 감정도 넣지 않는다. 강퇴 사유는 간단하다. '당일 취소'


모든 경우에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규칙은 있어야 하지만 그 속에 유연함과 관대함도 필요하다. 모임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 덕분이다. 그래서 세 가지 경우에는 예외를 두기로 했다.


1. 모임에 자주 나오셨던 분이 2. 어쩌다 한 번 3. 몸이 아프거나 야근을 하게 되었을 때, 또는 가족이 아플 때.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바깥은 여름 중에서)


관련해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걸까요?"


이런 대답이 나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에요."


동의한다.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 그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만 기억하는 데에도 품이 든다. 기본적인 것들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옆에 두자. 내가 가까이하고 싶은 이들만 곁에 두자고 강퇴 사유를 적을 때마다 다짐한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나 역시 어떤 약속에 있어서도 당일 취소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지 않는 것은 그 시간을 기다리고 준비한 상대를 대하는 예의다. 많은 사람들이 당일 취소를 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희망적이다. 혹시 취소하게 될 경우에 미안함을 표하는 것도. 나는 이런 사람들과 모임을 지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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