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전 쯤 초등학교를 소히 공부 좀 시킨다는 동네를 다니다 조금 느슨한 동네로 전학을 왔다. 눈으로 보이는 학원 수도 훨씬 적었고, 학교에서 보는 시험의 난이도 또한 초등학생인 내가 보아도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다른 학교였다. 그리고 엄마 영은 이런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하였지만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는 단순히 다른 동네가 아니었다. 엄마 영은 이사 온 동네를 깡촌이라 표현하였다. 가까운 곳에 지하철이 없을 뿐 크게 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하였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입학하였다. 정류장이라 부르기 애매한 오히려 이정표에 가까운 곳에서 정차하는 노란색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다. 15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에 몸을 실으면 익숙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매번 다르지만 네 명 정도의 기사님이 돌아가며 운전을 한다. 그중 두 명은 거친 운전과 학생들의 안전부절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하차 문을 늦게 열어주는 버릇이 있고, 그에 비해 다른 두 명은 친절하다. 특히 머리카락이 없으신 기사님은 가볍게 띄운 미소부터 거칠지 않은 목소리까지 피곤한 아침시간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준다. 지각을 해 버스 하차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학생이 있으면 학교 정문 근처에서 슬쩍 문을 열어주는 재치를 발휘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도착한 학교는 날 것 그 자체였다. 남자중학교라 더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로만 듣던 “여기 짱이 누구야”를 외치며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리지어 들어와 안내방송을 하는 교실 스피커를 자신이 말하는데 시끄럽다는 이유로 막아버렸다. 등치도 또래보다 5~10cm는 더 커 보이는 애들이 같은 반 친구들이라 생각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살짝 쭈그리고 엎드려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어울리는 것보다는 나는 관심 없으니 알아서 해라 라는 자세가 신변보호에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세상 요란스러운 자기소개가 끝나고 나니 교실 앞문이 스르륵 열린다. 긴 머리에 긴치마를 입고 들어온 선생님에 몇몇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소란스러움이 시작된다. 교실 가장 끝 쓰레기통이 있는 곳에 앉은 덩치가 산만한 친구(사실 친구인지 모르겠지만)와 그와 버금가는 크기에 맞은편 TV 바로 옆에 앉은 친구가 서로 욕을 받아친다. 교실 끝과 끝에서 시작된 소음은 다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더는 안 되겠다는 듯한 표정을 한 선생님이 교탁을 두드리며 소리친다.
“니들 다 조용히 안 해?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정신을 못 차리고… 지금 놀러 왔어!”
입술을 깨문 선생님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잠시 분위기가 사그라든다. 입학식 첫날부터 주체되지 않는 어수선함에 고개를 떨군다. 적응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잘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학교 다니기가 부담스러우면 어쩌나 싶어 엎드린 채 시선을 책상 쪽으로 내리꽃는다.
안전교육이라 적혀있던 일정에 따라 강당에 이동하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넓은 무대에 혼자 올라가 마이크를 잡은 한 중년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본인을 소개한다.
“아주 개판이구만 자, 조용히 하세요. 저는 저기 있는 경찰서에서 나왔어요. 여러분에게 안전교육해주려고”
매서운 눈빛과 중저음 목소리가 싸늘한 강당을 매운다. 빔 프로젝터, 간단한 칠판 하나 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예방 교육원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교우 간에 잘 지내라, 혹은 친구 괴롭히지 말아라 이런 말 하러 온 게 아니야. 현실적인 얘기를 하러 왔어. 지금 너네가 범죄를 저지르면 어디로 가게 되는지 그리고 몇 번에 경고가 주어지는지를 가르쳐 주러 온 거야. 그리고 그게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주변을 살피자 장난치던 친구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한 곳으로 모여있다. 소년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흔히 빨간 줄이라 말하는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말은 그 이후였다.
“너네들이 일부러 그랬든 실수로 그랬던 사람 죽이면 그때는 일이 커져. 혹시 욱해서 친구를 그냥 밀었는데 친구가 돌이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다 치자. 그러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교복 똑바로 차려입고 담당 경찰관님한테 상황 설명하고 잘못했다고 해. 너네들 형량 결정하는데 제일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신고하고 처음 보는 경찰관님이야 알겠어? 그리고 진짜 경고하는데 당황해서 도망가지 마라 진짜 일 커진다.”
열심히 듣는 척을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야 할 예방교육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있나 싶으면서도, 익숙하다는 듯 듣고 있는 선생님들을 보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집어던지고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 영에게 달려가 고발하듯 일러바친다.
“엄마 학교가 완전 개판이에요. 뭘 먹었는지 덩치가 아주… 아, 그리고 3학년 형들이 저희 교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니까 저희 반에 무서운 선배 동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슨 안전교육을 했는데 친구를 실수로 죽였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소년원이라는 곳은 어떤 곳인지 경찰서에서 사람이 나와서 두 시간 동안 강의하고 갔어요”
그녀도 당황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조금 노는 학교라고는 하던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 애들하고 있을 때는 뭐했어? 친구는? 좀 사귀었어”?”
“아뇨, 그냥 살짝 엎드려 있었어요. 분위기가 워낙 살벌해서…”
“그래, 그냥 다녀, 혹시 애들이 때리거나 하면 그때는 꼭 얘기하고”
엄마 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미 한차례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 영의 눈빛에 홀리듯 알겠다 말한다.